시대유감

by 준혜이

아직 아이들이 잠들어 있는 아침, 같이 누워 있던 이불속에서 먼저 나와 아이들을 내려다보며 일어나, 이제 그만 자라고 나는 되도록 친절하게 외친다. 내 말소리에 천천히 잠에서 깨어나는 아이들의 눈동자가 허공을 헤매다 내가 서 있는 아침으로 바르게 멈추면, 우리 둘이어야만 가능한 생명을 세상에 존재하게 한 약속과 결심 그 자체가 우리 사이 어딘가에서 보이지 않게, 하나의 또 다른 삶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매일 아침 부모로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잠에 빠진 아이들을 일으켜 세워 자신들의 인생을 살아가게 하는 것뿐. 스쿨버스 안에서 내게 손을 흔드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웃고 있는 나의 마음이 바로 우리 최후의 순간이 시작되는 자리 일지도 모른다.

발코니를 등지고 있는 소파에 앉아 커피를 마시면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읽는다. 비대면 수업이 초래한 아이들의 학습 결손이 수치화된 뉴스였다. 중학생들 얘기고, 평소 중위권 성적을 유지하고 있던 남자아이들이 문제라길래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다 문득 지난봄에 딸아이가 수학 시험을 본다고 얘기한 것이 떠올라 읽고 있던 뉴스창을 닫고 나는 그 결과가 언제 나오는지 이메일을 뒤졌다. 지난주에 온 이메일 중에 수학 시험 결과가 나왔다는 게 있었는데 왜 못 봤지, 생각하면서 아이의 시험 결과를 확인했다. 이럴 수가. 내 딸은 중학생도 아니고 주로 상위권 성적을 유지하던 여자 아이인데.

코로나가 시작되고 나서 아이가 어떻게 지냈는지를 되돌아보면 이게 그리 놀랄 일은 아닌데 한편으로는 이런 일에 침착하면 새엄마 아니야?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아이가 수학이 싫다고 말할 때부터, 그 싫다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못하는 나를 고민하는 나를 발견했을 때도 아이가 별다른 노력 없이 학교에서 가르쳐준 대로만 해서 영원토록 시험을 잘 칠 리 없다는 건 예상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방에서 일하다 부엌으로 내려온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자 남편은 선생님에게 항의 이메일을 보내겠다고, 아이를 혼내야겠다고 흥분했다. 내가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말만 골라서 내뱉는 아 씨X, 이 X끼 진짜 내 반쪽, 이라고 느낀 순간이었다.

넌 선생님한테 잘 배워서, 선생님이랑 싸우고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쫓겨났는데, 그 과목 시험 잘 봤냐!!! 지금 우리랑 애랑 누가 더 기분이 나쁘겠어, 시험 못 봤다고 애를 왜 혼내! 넌 나쁜 짓해서 성적 높인 적도 있다며!!

한결 편안해진 마음으로 아이가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나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시대유감을 고막이 터져라 크게 틀고 반복해서 듣는다. “모두를 뒤집어 새로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네 으아아아아아아”, “이 세상이 모두 미쳐버릴 일이 벌어질 것 같네”

아이에게 말한다. 우리가 좀 신경 쓰면 이 점수가 어떻게 변할지 기대돼. 피아노를 칠 줄 안다고 해서 네가 지금 피아노 배우는 걸 멈추지는 않잖아, 어차피 수학 시험에서 백점을 맞았다고 해도 수학 공부하는 걸 그만둘 수는 없어. 알면 알수록 배울 게 더 많아지니까. 아이가 말한다. 문을 열면 문이 있고 그걸 열면 또 문이 있는 것처럼? (그래서 우린 어떤 노력을 하게 될 거지. 이렇게 개소리 배틀로 이어지는 대화를 나누다 들켜서 결국엔 남편한테 둘 다 혼나고 아이에게는 아주 무서운 과외 선생님이 붙게 되는 건가. 내년에는 우리가 이 점수를 코로나 시대의 산물이라고 추억할 수 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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