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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혜이

아이들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하루에 세 시간뿐이었지만 그 마저도 이제 혼자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니 더 이상 생각을 하면 안 되겠다. 물론 아이들을 써머 캠프에 등록시키고 하루 종일 나 혼자 시간을 보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다. 방학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그러면 아이들이 은연중에 내가 자신들을 귀찮게만 여긴다고 믿게 될까 봐. 가끔 애들이 너무 귀찮아서 미칠 것 같은 내 마음이 몸 밖으로 새어나가 아이들의 무의식을 떠도는, 근거 있는 소문이 되지 않게,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집 안에서 아이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나 스스로를 단속해보려고 한다. 우리가 각자 떨어져 지내는 시간으로 다시 만날 우리를 기대하게, 함께하는 우리의 시간이 혼자된 서로를 완성시키길 바라는 마음으로 말이다.


지난 4월부터 두 달 남짓한 기간 동안 등교를 한 아이들은 마스크를 쓰고 선생님, 친구들과 한 교실에서 등교하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온라인 수업을 했다. 유치원생인 둘째와 같은 반인 아이들은 모두 19명, 그중에 교실에 나와 앉아있는 아이들은 둘째까지 8명이었고, 4학년인 첫째는 반 전체 25명 중 등교하는 단 3명의 아이들 중에 하나였다.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이 길어지자 공립학교와 차별화된 교육 과정의 사립학교로 전학한 아이들이 생겨났고 이런저런 고민 끝에 공교육 제도에서 빠져나가 홈스쿨링을 시작한 아이들도 있다고 들었다. 한 시대를 헤쳐나가는 방법이 하나가 아니라는 점이 불안하고 희망적이다. 그래서 우리의 실수, 시간 낭비, 무지, 현실 도피, 배제? 이런 의심 속에 흔들리면서도 안심하며 이 시대를 우리 뒤로 물러나게 하는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그동안 학교에서 빌려 쓰던 크롬북과 아이패드를 돌려줄 날이 되어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고등학교로 운전을 해서 갔다. 학교 건물 입구에 차를 세우고 트렁크를 열고 기다리니까 교직원이 우리 차로 다가와 그 안에서 크롬북과 아이패드를 꺼내고 트렁크를 닫아준다. 멈춰있던 차를 움직이면서 아이들에게 나는 너네가 어른이 될 때까지 잘 돌본 다음, 우리가 학교에서 빌려 쓴 컴퓨터를 되돌려준 것처럼 이 사회에 환원할 거라고 말했다. 이건 어디까지나 내가 아이들의 주인이 되거나 아이들을 나의 소유로 여기지 않겠다는 선언이었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다가올 내일에, 어른이 된 아이들의 삶에 꼭 내가 없을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마저 하려던 말을 멈추고 사랑한다는 말로 아이들의 침묵을 덮었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내가 너네를 사랑하는 걸 어떻게 알 수 있냐고 물어봤다. 난 엄마 딸이니까, 난 엄마 아들이니까. 우리가 맺고 있는 관계를 사랑이라고 아이들은 말한다. 하지만 나는 더 구체적인 답이 듣고 싶은 것이었다. 내가 말하고 있을 때 엄마가 내 두 눈을 바라보고 그 얘기를 잘 들어주면, 나를 안아주면,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어쩌면 아이들이 한국말로 된 나의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언제 끝날 지 모를 시간 속에서 영원할 우리 관계를 돌보고 기르는 일이 애틋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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