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나이가 한 열 살쯤 많은 남자와 결혼했다면 그 남자는 나를 아이를 사랑하듯이 사랑해주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언젠가는 아니 다음 생에는 그런 오빠 옆에서 평생을 아이처럼 떼를 쓰고, 투정을 부리고, 주접을 떨면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이 세상에 그런 남자는 없다고 말했다. 남편에게 불만이 있어서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환상과 후회가 말로 내뱉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 없을 만큼의 압력을 마음에 가했을 뿐, 정말 그뿐이었다.
우리가 이런 대화를 나눈 건 남편이 매주 출장을 다니고 있을 때였다. 그 주 출장지에서 남편이 어떤 신문 기사를 카톡으로 보내왔는데 남편이 너무 잘해줘서 이혼을 한다는 내용이었다. 60대 중반의 부부, 남자는 두 번째 결혼이었고 여자는 처음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자는 매일 침대 위에서 아침상을 받았고 남자는 여자를 아기 돌보듯이 돌보았다고 한다. 이런 신혼 생활에 감사해하던 여자는 시간이 갈수록 불편함을 느끼다가 결국에는 두 사람의 관계가 정상적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둘은 이혼했다. (야, 그러면 이런 거 카톡으로 보내는 것도 이혼사유될 수 있어.)
남편이 코를 심하게 골아서, 아내가 청소년이 된 아들이 볼 일을 보고 난 뒤처리를 해주어서, 남편이 신혼여행에 엄마를 꼭 데려가야 한다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여전히 모유수유를 하고 있어서! 7년 동안 매일 아침 아내가 남편에게 커피를 어떻게 타 주길 원하냐고 물어봐서 등등 우리는 심심할 때 사람들이 이혼하는 온갖 이상한 이유를 찾아보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래, 너 코 고는 소리는 큰 것도 아니지. 그래, 오래 걸리긴 했지만 넌 애들 모유수유를 끊었어. 이혼을 하게 된다면 누구보다 특이한 이유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나는 우리의 이혼은 불가능하거나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생각했다.
매주 로또를 사는 부부가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어느 날, 남편은 로또 당첨번호가 발표된 날 저녁에 아내 몰래 당첨번호를 찍은 로또를 샀다. 샤워를 하러 들어가는 척 화장실 문 뒤에서 남편은 아내에게 냉장고 문에 붙어있는 로또 번호를 맞춰달라고 부탁했다. 15분이 지난 뒤 아내는 친정 엄마에게 가보기로 했던 걸 깜빡 잊었다면서 아이들을 데리고 집을 떠났다. 냉장고 문에 붙어있던 로또는 그 자리에 없었다. 이틀이 지난 뒤, 아내는 현관문을 열자마자 남편에게 쌍욕을 퍼부었고, 둘은 이혼했다.
이런 장난을 칠 정도면 평소에 사이가 좋았을 것 같은데,라고 남편이 말했다. 여자는 로또를 살 때마다 당첨만 되봐, 당장 이혼이야, 했을지도 모르고 자신에게 큰돈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마자 자신이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남편을 떠나는 것이었다는 걸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생각에 빠져들었다가 가끔씩 감탄사만 내뱉었다. 생각을 조심해야겠어, 마음을 지켜야겠어, 장난도 봐가면서 쳐야지, 돈이 문제야, 진짜 돈이 문제일까? 애들은 무슨 죄야? 아마도 우리는 이런 생각을 각자 하고 있지 않았을까.
세상에 이혼 사유가 되지 못할 일은 없다. 우리가 서로에게 사랑이 되지 못할 이유도 별로 없다. 그렇다 해도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멈출 방법을, 떠다니는 마음을 붙잡을 방법을 찾고 싶다. 그래서 그때까지 되도록이면 몸을 멀리 움직이지 않기로 한다. 나를 아이처럼 대해줘, 그렇지 않으면 로또에 당첨될 때까지 로또를 산 다음 당첨금으로 나를 잘 돌봐줄 오빠를 살 거야. 너랑 이혼도 안 하고 셋이 같이 살 거야. 네가 이혼을 원한다면 우리가 이혼하는 이유는 신문 기사가 될 거야. 남편이 웃는다. 비웃는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