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온통 하얗고 천정이 높은 커피숍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언니가 잠깐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언니가 앉아있던 의자 위에 놓인 작고 빨간 가방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 속을 비어져 나온 서류를 발견하고는 한 손을 뻗어 꺼내 읽기 시작했다. 그 서류는 암에 걸린 언니의 인생에 3년 시한부를 선고한다는 의사의 편지였다. 편지를 읽고 나서 나는 언니의 남은 3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고 나서 언니가 최근에 아들이 둘 있는 남자와 재혼한 사실을 떠올렸다. 전 남편과 그 사이에서 낳은 아이들하고는 단호하게 헤어져버렸다는 것도.
서류를 손에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언니가 웃었다. 언니가 자리에 앉기를 기다렸다가 나는 언니의 이혼과 재혼이 의사의 편지와 관련이 있는 거냐고 물었다. 언니는 그렇다고 대답했다. 자신과 함께 능숙하게 고통을 겪어낼 가족을 찾아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덧붙여서. 언니 예전 가족은, 하고 하고 싶은 말을 마치지도 못한 채 언니의 두 눈을 바라보자, 언니가 나를 보며 울기 시작했다. 아주 오랫동안 언니는 내 앞에서 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울면서 언니는 새로 생긴 가족에게는 이런 나라도 필요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런 언니를 가만히 구경만 하고 있는 내가 참을 수 없이 불편해서 이게 다 꿈이라는 걸 알았다. 하지만 그러고 나서도 나는 한참을 우는 언니의 얼굴을 보고 있어야 했다.
꿈속에서는 언니가 이혼한 남자와 재혼한 남자가 당연히 서로 다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잠에서 깨어나 생각해보니 그 둘이 같은 얼굴이었다. 그러니까 가족의 구성원은 같고 재혼 가정, 이혼 가정 이렇게 이름만 달라진 것뿐이었다. 하나의 고통을 공유하며 겪는 죄책감을 피하려고 찾은 관계가 다시 가족이어야만 했는지 꿈에서도, 꿈 바깥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언니의 시한부 인생, 이혼과 재혼은 고통이 극심한 사람에게는 타인의 고통이 더해질 수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이 타인의 불행 중 다행이 되어보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아니라면 거대한 고통 앞에 우리 모두는 예전과 다름없는 사람이지만 그 전과는 다른 관계로 살아가야 한다는 뜻일 수도 있고.
누군가의 고통이 되고 싶지 않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을 나로 괴롭게 하고 싶지 않다. 그래야 내가 나 하나만큼의 고통으로만 괴로울 수 있다. 누군가로 인해 고통받고 싶지도 않다.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나의 고통이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야 내가 나 하나만큼의 고통만으로 살아갈 수 있다. 살아가는 인간의 괴로움을 안다. 타인의 괴로움에 고통 없이 참여하고 싶다. 나의 괴로움에 타인을 고통스럽지 않게 초대하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해봐도 고통이 나누어지지 않는다. 서로 상관없는 고통이 만나 또 하나의 괴로움을 만들고, 그 하나의 고통을 마주하는 동안 서로에게 설명이 필요한 괴로움이 또다시 생겨나는 걸 막을 길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영원히 혼자일 수 없는 이유는 고통을 사람으로, 사랑으로 바꿔도 말이 되는 문장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꿈에 언니가 나왔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