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가위손

by 준혜이

2020년이 되고 나서 남편은 한 번도 미장원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 때문만은 아니고 남편이 원래 미장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남편은 미루고 미루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질 때가 돼서야 겨우 미장원에 간다. 나도 미장원에 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남편이 미장원에서 느끼는 불편한 마음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다. 그러니까 미친놈도 아니고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남편의 긴 머리에 잔소리하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져 귀를 덮을 지경이 되자 남편은 나이키 헤드밴드를 사 와서 머리 뒤로 질끈 묶었다. 그 모습은 마치 나이키를 위해 투쟁하는 투사 같아 보였달까. 남편이 이토록 나의 눈길을 사로잡은 적이 한동안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의 남편은 고뇌하는 예술가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떤 날에는 최양락처럼 보이기도 해서 웃음을 멈추기 힘들었다. 회사 미팅이 있는 날은 헤어젤로 긴 머리를 뒤로 다 넘긴 남편이 위에는 셔츠, 아래는 속옷 차림이 되는데 그러면 변태나 연쇄살인범이 따로 없다.

이번에는 아주 중요한 미팅이 있다며 남편이 나에게 머리를 잘라달라고 부탁했다. 나의 이발 솜씨를 믿을 수는 없는데 미장원에 가기는 더 싫은 것이다. 나는 남편을 아들이라 생각하고 가위질을 시작했다. 남편의 젖은 머리카락은 문어다리처럼 남편의 얼굴을 타고 내려왔다. 평소에도 남편의 머리숱이 점점 적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아, 이걸 뭐라고 말해야 할까. 화장실 거울로 남편과 눈이 마주쳤는데 남편이 빛의 속도로 나를 외면했다. 하지만 그건 이미 내가 남편의 시무룩한 표정을 본 뒤였다.

연애할 때는 나 말고 다른 여자의 관심을 받을 수 없게, 결혼해서는 화가 나서 남편이 내 다리털마저 부러워하는 대머리가 되기를 바랐는데 남편에게 미안하다. 그래도 머리를 짧게 자르니까 듬성듬성해 보이던 남편의 머리가 꽉 차 보인다. 남편도 그 모습에 마음이 놓이는지 거울을 보고 웃는다. 남편이 머리가 있거나 없거나 나는 정말 상관없는데 남편이 자기 모습을 보면서 슬퍼하는 건 못 보겠다. 남편이 대머리가 되면 아마 나는 남편을 사춘기 소년 대하듯 조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것이 진정한 가진 자의 여유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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