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생태계

by 준혜이

공원 입구 게시판에 지명수배자처럼 꽃매미의 (Spotted lanternfly) 사진이 붙어있다. 사진 아래로는 꽃매미를 발견하면 해당 기관에 신고하거나, 카운티 차원에서 이미 해충 박멸에 들어간 지역이라면 신고할 필요 없이 꽃매미 발견 즉시 죽이라는 지령이 적혀있다. 공원 산책 중에 꽃매미를 발견하게 되면 주저 없이 하지만 아이들 모르게 밟아 죽여야겠다고 결심했다. 한국이나 중국에서 어렵게 여기까지 와서 정착했는데 겨우 내 발 밑에서 생을 마감할 꽃매미에게 바칠 꽃다발은 없었다. 다만 해롭고 아름다운 것에 꽃을 갖다 붙이는 한국과 벌레의 무늬로 이름을 짓는 외국의 차이에 우월감을 느끼며 나의 꽃딸, 꽃아들, 꽃남편이 언젠가 한 번은 한국에서 1년은 살아봐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꽃매미는 사람에게 직접적으로는 해롭지 않지만 나무와 사람들이 먹는 온갖 작물에 피해를 입힌다고 했다. 무엇보다 강한 번식력으로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것이 꽃매미가 처한 운명을 돌이킬 수 없게 만들었다.

11개의 병원에 자신의 정자를 기증한 네덜란드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의 정자로 102명의 아이들이 태어났고, 남자는 경찰 조사를 받았다. 나중에 이런 식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관계가 복잡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한 사람의 정자로 25명 이상은 태어날 수 없게 한다는 법이 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공터에 100명이 모여 있는 장면을 상상한다. 처음에는 모두 같은 나이의 남성 100명이 복제 인간처럼 서 있는 모습을, 그다음에는 갓난아기부터 노인까지 서로 전혀 비슷하게 생기지 않은 사람 100명의 모습을 떠올려봤다. 남자는 좋은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지만 인간계를 교란시키고 말았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물게 건강한 정자를 가졌다는 점에서 남자는 우월감을 느꼈을까.

첫째 아이를 낳고 꽤 오랫동안 나의 관심은 오로지 사람의 몸과 생명이었다. 몸소 실천한 임신과 출산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만 같았다. 사람이 정말 사람을 낳는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감탄하고 그랬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남편 앞에 가임기 여성 30명이 있으면 하루에 한 명씩 한 달 동안 새로운 아기를 만들 수 있다고.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 남편은 화를 냈는데, 나는 웃었다. 그 순간 우리 사이를 혼란스럽게 하는 것만으로도 온 인류를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고 생각했을 리는 없다.


keyword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팔로워 354
매거진의 이전글생일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