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8시가 되면 남편과 시동생, 시아버지의 다급한 목소리가 우리 집 거실을 채운다. 들려? 여기로 와봐, 나 죽었어. 세 사람이 모여 있는 곳은 VR 게임 서버. 게임 컨트롤러를 두 손에 꼭 쥐고, 두 눈은 VR 헤드셋에 맡긴 채, 세 사람은 각자의 장소에서 군인이 되어 함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내 눈 앞에서,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몸부림치는 남편에게 군대도 안 갔다 온 게, 한다, 속으로.
VR 게임기를 사고 남편은 나에게 가상현실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어 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해 주길 바라는 남편의 마음을 알아서 나는 그런 거 쓰기 싫다고 한다. 포기할 줄 모르는 남편은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 빠져 스마트폰으로 본 걸 보고 또 보고 있는 나에게 다가와 넷플릭스가 나오는 VR 헤드셋을 왕관처럼 씌워준다. 나는 남편이 어떤 반응을 기대하고 있는지 아니까 불편하다고 불평하며 헤드셋을 벗어버린다. 남편이 바닷속 풍경을 보여줬을 때는 갑자기 상어가 나타나는 바람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만.
아파트 경비실 옆 벤치, 인생 최초의 키스 도중 나에게 너 정말 처음 하는 거 맞아?하는 남자 친구의 목소리로 시작해 추운 겨울날 집 근처를 남자 친구 외투 속에 안겨 걸어 다니다가, 학교 근처 벤치에서 둘이 끌어안고 있는데 내가 그냥 안겨만 있진 않았으므로 야, 누가 볼까 겁난다, 는 말을 들으며, 화가 난 내가 버스터미널 주차장에서 남자 친구의 바지를 속옷이랑 같이 확 끌어내려버리는 일로 마무리되는 가상현실이라면 끝까지 참고 봐줄 수 있다고 남편에게 말 못 하는 내가 말을 하는 가상현실의 현실의 가상의 현실의, 나, 다시 돌아갈래.
다이아몬드 반지를 내밀며 나에게 청혼하던 바로 그 모습으로 남편이 허공에다 총을 쏜다. 남편이 점점 나 혼자 보기 아까운 모습으로 나이 들고 있다. 나는 깔깔거리며 웃다가 야, 빨리 죽지 마, 했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