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해피 뉴 이어

by 준혜이

한밤중 커다란 구덩이 앞에 서 있는 우리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본다. 친구, 라는 단어를 한 장면으로 표현해야 한다면 나의 친구는 깊은 구덩이를 함께 내려다보는 밤이다. 스무 살 시절의 우리는 과연 우리가 졸업을 하기 전에 학교가 이사하게 될 것인가를 두고 걱정하다,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무시하고 지냈다. 친구들은 입학한 학교에서 무사히 졸업했고 나는 해마다 휴학을 반복하다 어느 순간 다른 학교로 편입을 해버렸다. 하지만 어쩌면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가 추억 없는 캠퍼스를 누비며 나이 많은 복학생, 만학도라 놀림받는 언니, 누나로 살아볼 수 있을지 몰라 휴학 상태를 유지하는데 힘썼으나 쓸데없는 짓이었다.

대학 졸업 후에도 학교 근처에 살면서 직장생활을 하는 친구 집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친구가 키우던 고양이 털을 빗겨주면서 술을 마시다가 우리는 망설임 없이 공사장이 되어 다 파헤쳐 저버린 학교를 보러 가기로 했다. 깜깜한 골목길에 울려퍼지는 미친 웃음소리가 된 우리의 눈 앞에 커다란 구덩이가 조용히 펼쳐졌다. 밤하늘보다 더 까만 그 구덩이에 별이 뜬다면 밤하늘에서 보다 더 빛날 거라는 생각을 뭐하러 할까. 우리는 괜히 왔네, 괜히 봤어, 하면서 슬쩍 서로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그 구덩이를 내려다보았다. 그 순간 우리의 뒷모습이 친구. 이렇게 멀리서 한 해가 끝나갈 때마다 떠올려보는 차마 발 길이 떨어지지 않던 그 느낌이 바로 청춘. 우리 올 해는 얼마나 크고 까만 구덩이 앞에 혼자, 여럿이 서 있었나 생각해보면 그냥 내가 구덩이.

내가 아는 모든 너의 안녕을 바라고, 내가 잘못한 모든 너를 반성하면서 사람인 상태를 유지한다. 멀리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상관없이 나를 아는 모든 너를 말로 마음으로 말이 될 수 없는 어떤 기운으로 기억하고 사랑한다. 까만 구덩이로 지는 별이 빛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너는 나한테 진다. 올해가 간다. 새해가 온다. 이게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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