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기초는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말. 그 위로 모아 올린 시간의 흔적과 그 아래로 가라앉는 시간이 모두 보이는 자리에서 무너지는 마음이 슬프다. 이런 슬픔은 농담이 되어 사람들을 자꾸 웃기고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변해야 하는데 이제는 아무도 그런 농담을 하지 않고,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웃어주지 않는다. 울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리 슬퍼도 농담이 되어 사라질 필요 없는 이야기를 읽어야지.
“환상의 빛”은 유미코가 죽은 남편에게 쓰는 편지다. 남편이 말없이 포기한 미래를 살아가면서 유미코는 끊임없이 남편의 침묵에 말을 건다. 그렇게 되돌아보는 그녀의 지난 시간 속에는 삶의 무대가 된 가난, 이웃의 죽음이 꺾어버린 삶의 의욕과 할머니의 행방불명이 있다. 이 모든 일을 겪어낸 소녀 유미코 앞에 나타난 소년 남편은 사랑이면서 예전보다는 나아진 가난, 짧은 행방불명이었다가 결국에는 확인이 불가능하게 죽어버린 몸으로 유미코가 하는 혼잣말의 주인이 된다.
유미코는 남편이 죽은 지 7년이 지난 후에 편지를 쓴다. 그 시간 동안 그녀는 다른 사람의 말로만 전해 들은 남편의 마지막 뒷모습을 상상하며 계속해서 혼잣말을 한다. 마음은 유서 한 줄 남기지 않은 남편의 죽음에 가까웠지만, 유미코는 가족과 이웃의 도움으로 아들과 둘이 남겨진 생활을 자살한 남편의 무덤으로 만들지 않았다. 자신의 결정에 불안해하면서도 그녀는 아이와 함께 살던 곳을 떠나, 딸이 하나 있는 남자와 재혼을 한다.
유미코가 이제 와서 죽은 남편에게 말이 아닌 문장을 전하는 이유를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재혼한 남편이 그녀에게 누구와 그렇게 혼잣말을 하는 거냐고 물었을 때 처음에는 대답을 피하다 나중에는 재혼한 남편과 그의 가족들에게 혼잣말을 하고 있었던 거라고, 그렇게 당신의 가족에 스며들기 위해 노력한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거짓말은 삶의 의지. 이제는 남편이 아닌 정체 모를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유미코의 고백 뒤에 이어질 말은 죽은 남편에게도 말할 수 없는 말, 그와의 작별인사인 것 같다.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