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일과를 마치고 아이들 옆에 누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게 남편이 할 얘기가 있다며 안방 문 앞에 서서 잠깐 나와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듣지 않았으면 해서 저러는 거라는 눈치는 있는데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싫으니까 나는 남편에게 그냥 카톡을 하라고 했다. 남편이 이게 카톡으로 남길 얘기는 아닌 것 같다고 우물쭈물하는 순간 나는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남편과 함께 건넌방으로 들어갔다.
몸에 이상이 생긴 것 같다며 한 번 봐줄 수 있냐고 남편이 물었다. 방문을 잠그고 남편은 속옷을 내렸다. 이런 병원놀이는 해본 적 없지만 걱정과 호기심 그리고 보호자의 권위로 나는 남편의 벗은 몸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뭔가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무시해 버릴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우리는 확신했다. 날이 밝는 데로 병원에 가보기로 하고 진료 비슷한 진료를 마친 후 우리는 각자의 스마트폰을 쥐고 병명 찾기에 몰두했다. 몸의 증상을 적절한 단어로 옮겨 검색에 검색을 거듭한 끝에 의심되는 몇 개의 낯선 용어를 알아냈다.
병원 진료를 예약하면서 남편은 이런저런 질문에 대답을 해야 했다. 최근 새로운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냐는 질문까지 받았다는 남편에게 잘 생각해보고 대답한 거 맞지, 하면서 나는 소파에 앉아 낄낄거렸다. 의사가 되고 싶어, 한 인간의 몸에 관한 모든 것을 말로, 손으로, 기술의 도움으로 낱낱이 파헤치며 돌봐주고 치료해주고 죽음에서도 생명을 배우는. 하지만 나는 남편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문을 잠근 뒤 몸의 증상이 어젯밤보다 좀 나아졌는지 한 번 보자고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남편의 의사는 2년 전 내가 고심 끝에 선택한 백인 여성 의사다. 그 때 아픈 데는 없었지만 나의 성화에 의례적인 진료를 마치고 돌아온 남편이 의사가 자신의 생식기를 촉진했다며 뭔가 당한 느낌이라고 불쾌해했다. 그리고 내가 보여준 의사의 프로필 사진은 10년 전 아니 그보다 더 오래된 사진인 게 분명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의사인 친구에게 남편의 몸을 만지는 의사의 손을 흉내 내가며 말해주었다. 그가 요즘은 촉진이 필수는 아니라고 해서 그 자리에 모여있던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게다가 그가 나이 든 의사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덧붙이는 바람에 나는 남편의 눈치가 보였다.
우리의 짐작대로 남편의 상태는 심각한 게 아니었다. 병명도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남편은 약과 연고를 처방받고, 걱정은 덜고, 성관계를 금지당했다. 내 앞에서 무방비한 상태로 거리낌 없이 맨 몸을 보이는 남편과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들여다보는 나 사이에 이제 낭만은 없다고 나는 남편에게 욕을 먹어가며 시시때때로 큰소리를 내며 웃었는데, 당분간 그건 안된다는 의사의 말 한마디로 나는 소리 없이 한쪽 입꼬리만 올리며 웃을 수 있게 되었다. 의사가 되고 싶어, 거부할 수 없고 값비싼 말을 하는. 하지만 나는 그게 무엇이든지 간에 하지 말라는 말을 들으면 폭주하는
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