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준혜이 May 03. 2023

부재로 존재할 영원

    세 번째 하프마라톤 다음은 우리 동네에서 열리는 달리기입니다. 이 달리기 대회로 말할 것 같으면 말이죠, 작년 5월에 처음 주최되기 시작한 행사다. 아니다. 추모 행렬이다. 살아있는 동안 달리기를 좋아했다던 동네 아이의 짧은 생을 추모하는. 이 동네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 각자 눈길이 머무는 모든 곳이 낯설기만 하고, 스쳐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마다 거북하면서 그들의 친절이 간절하기만  그때, 뭐 이런 끔찍한 일이 다 있을까, 울컥, 외면하고 싶어 하면서도 나와 남편은 우리 아이들을 그 추모 행렬에 동참시켰다.


내 아이를 추모하는 행사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동네 호숫가에 모인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를 붙잡고 인사말을 하는 죽은 아이 아빠의 두 손은 울음을 참으며 통곡하는 목소리와 함께 술렁이며 쓰러질 듯이 보였다. 일 년 전의 나는 달리지 않는 사람이었지만 출발선에 모여 선 이 동네 저 동네 소속 달리기 클럽 회원들의 유니폼과 수많은 개인들의 형형색색 운동화를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 사람들은 삶이 부재한 아이의 세계를, 앞으로 펼쳐질  그 빈 세월을, 아이의 부모, 가족, 친구들과 함께 헤아려나간다고 순간적으로 확신했다. 그러니까 남편과 아이들에게 다음에는 나도 같이 뛸게,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또 한편으로는 이 달리기 대회가 제1회로 끝이 난다 해도 그 이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주 일요일 아침이 오면 첫째는 제2회 Emma's Run에서 걸스카웃 친구들과 같이 2.5마일을 걸을 것이다. 둘째는 남편과 함께 정해진 자리에 머무르며 달리는 사람들에게 달리기 코스를 안내하거나 물을 나눠  것이다. 그리고 나는 5마일만큼의 거리와 시간을 온마음을 다해 달려 부재로 존재하는 Emma의 영원을 세어볼 것이다. 어떤 울음은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와 거친 숨소리에 환희마저 동반한다는 것을 온 가족이 몸소 배워볼 정이다.


이것으로 우리 일상의 기반이 삶이거나 죽음인가 하는 경계가 무너질 듯 다 허물어지진 않은 채로 희미해지고, 우리가 평생과도 같은 단 하루를 매일같이 맞이할 수 있다면 더욱 좋겠지. 하지만 우리 또한 결국 부재로 존재할 영원이므로 Emma's Run에 관한 이런 말과 글과 생각이 어느 순간 한낱 공백으로 잊힐지라도 상심할 필요는 없을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