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 순발력

by 준혜이

뒷마당에서 꽃을 꺾어온 딸아이가 꽃이 시들기 전에 빨리 꽃병에 물을 담아오라고 주문을 내렸다. 딸아이는 꽃의 줄기를 길게 꺾어야 꽃병에 꽃을 예쁘게 꽂을 수 있다는 걸 몰랐나보다.


손바닥 위에 꽃을 올려놓고 내가 어쩔 줄 몰라하며 허둥대고 있자 시동생이 나섰다. 납작한 플레이도 통에 물을 담고 플레이도 뚜껑에 칼집을 내어 딸아이에게 꽃병을 만들어 준 것이다. 누구에게나 잠재된 육아 순발력이 있다. 온 가족이 우리 딸아이의 노예라는 것도 시동생이 잠재력을 발휘하는 계기가 되었겠지만 말이다.


나만을 위해서라면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살 수 있다. 지금까지 내가 혼자였으면 세상이 유치하고 무의미해서 빈 플레이도통이 꽃병이 되거나 말거나, 아니 꽃을 집에 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이와 살면 쓰레기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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