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겹과 달리기

by 준혜이

중학생이 더는 입지 않는 아디다스 레깅스 위로 까만 츄리닝 바지를 겹쳐 입고, 반팔 티셔츠에 긴팔 티셔츠에 후드티를 덧입어, 이렇게 겹겹이 나를 꼭 끌어안는 섬유 감촉으로 내게 들러붙는 겨울. 달린다. 오늘 이 세상 날씨와 내 속도는 날 몇 꺼풀이나 벗길까 기대하면서. 그러나 집 밖으로 나가자마자 후드부터 먼저 뒤집어쓴다. 두 줄을 끝까지 잡아당겨 급히 매듭짓고, 눈이랑 코만 겨우 지금 겨울에 내놓는다.

단 한순간의 불편조차 참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해결하는 단호함. 달리면서 점차 더워지는 머리를 감지해 코 아래 줄 하나를 잡아당겨 리본을 풀어헤쳐 후드를 벗겨 낸다. 마음 안의 몸, 그 온도 밖의 모자, 그 포옹 바깥으로 다시 맨 처음 집 밖을 나선 것만 같이 신선하게 내게로 스며드는 냉기. 그 찬바람에 쉴 새 없이 흐트러지는 머리칼을 자유로 느끼며 오늘은 여기까지만 벗겠어요.

달리기 자체가 인내. 이 시간 내내 몸을 움직여 한겨울 흰 숨을 멈추지 않고 내뱉으면 이 계절이 천천히 봄으로 녹아가는 풍경 속에 내가 심은 땀방울로 피고 지는 달리기를 계속해서 달리는 달리기를 달리기가 싫어지는 달리기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달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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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혜이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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