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 나는 두 번 만취했다. 소년 친구 아빠와 엄마가 대낮부터 그들의 집 뒤뜰에서 내게 권한 알코올 도수 낮은, 과일 주스라 해도 믿을 만한 술을, 커다란 파라솔 아래 앉아 벌컥벌컥 들이키며 한 번. 그렇게 취한 나를 목격한 뒤 내가 실로 술꾼인 줄 알고 집으로 초대해 보드카와 각종 도수 높은 술을 몸소 대접한 또 다른 소년 친구 엄마 아빠의 성의에 그 집 거실 소파에 파묻혀 다시 한번. 이 경험으로 알게 된 건, 차가운 술에선 알코올향이나 맛이 잘 나지 않아. 무더위와 한 모금 삼키자마자 머리가 깨질 듯이 시원한 맥주, 소주, 각종 주류 조합은, 글쎄, 긴장이 풀어져 신나기도 하고 몸에 열이 올라 붉어진 살갗이 부끄러우면서 술기운에 졸음이 와 두 눈이 제대로 떠지지 않는 열반이랄까.
꾸준하게 달리기를 이어가는 내 일상이 규칙적인 음주와 별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달리기도 중독이라 말하는 이유가 어딘가 있다고. 다만 술 한잔으로 순식간에 얻을 수 있는 열기, 온 세상의 테두리를 부드럽게 날리는 여유와 나른함까지 달리기로 도달하기 위해선 적지 않은 시간과 거리가 걸린다는 사실이 적어도 날 수치스럽게 하진 않는 거지. 그러므로 현관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운명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수고와 예측 불가능한 러너스하이를 교환하는 스스로와의 이 불공정거래가 매번 그 누구의 반대도 없이 새로 성사되는 것이다.
여럿이 함께 한 자리에서 술 한 잔 권하듯 달리기를 권하는 우리를 잘 알면서도 미처 주체 못 하고 모든 대화를 그러니까 달리기를 하면, 으로 마치는 찰나, 예전과 달리 나는 이제 당장 후회한다. 이 세상과 타인을 내 존재와 생활 방식으로 밖에 헤아리지 못하는 부주의함, 하지만 다른 사람 속을 헤집어 놓을 의도 전혀 없는 순진함이 그 순간 우리 사이에 유해하고 무익한 술주정처럼 부려진다는 걸 스스로 금세 알아채버리기 때문이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타인을 사랑하는 법, 타인에 매몰되지 않으면서 서로 영원히 다른 채로 사이좋을 우릴 수련하는 방법을 술과 달리기로 찾을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가장 낮은 자리에서
나를 제외한 모두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는 꿈을 꿔
나 하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얻을 수 있는
그 모든 삶에 대해 생각해
이루었다가 무너뜨리고,
나누면서 곱하는
시간과 공간,
기억과 현실 속에서도
변함없이 흔들리지 않는 하나를
나를 벗어나는 내가 되어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