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 문은 이미 활짝 열려 있었다. 동네 도서관 2층 한구석에 자리한 교실로 걸음걸이를 더욱 서두르게 만드는 장면, 누구라도 환영받을 것만 같은 공간. 교실 안으로 들어서자 글쓰기 선생님과 학생 한 명이 자리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말고 내게 고개 돌려 인사한다. 둘 다 나이 지긋한 백인 여성으로 서로 오래 알고 지낸 친구 사이라고 얘기해 준다. 선생님은 책상 위에 놓인 글쓰기 수업 신청자 명단을 한 번 쓱 훑어본 뒤 내 이름을 단 번에 알아맞힌다. 나는 선생님을 마주 보는 자리에 놓인 책상 위로 물병과 노트로 무거운 에코백을 내려놓고 외투를 벗어 의자에 건 다음,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의자에 앉았다.
한 교실에 모인 어른 아홉 명 중에 세 사람은 출간작이 하나 이상인 작가였다. 그런 사실을 알고 나서인지 각자 본인 이름의 이니셜로 시작하는 형용사로 자기를 소개해보자는 소설가 선생님 말에 Jealous를 외쳐버린다. 모두 내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며 소리 내어 웃고. 지금 여기서 처음 만난 얼굴들을 둘러보며 오랜 습관대로 이 중에 내가 막내일지 아닐지를 가늠한다. 아니네. 선생님 오른쪽에 앉은 흑인 남매는 20대 후반이나 30대 초반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출간 작가가 아니더라도 부럽고 질투가 나니까, 는 아니고, 둘이서만 나누는 얘기를 슬쩍 엿들었다.
글감이 주어진다. 정해진 시간 안에 문장을 쓴다. 다 쓴 글을 소리 내어 읽는다. 다른 사람 글에서 인상 깊었던 문장을 얘기한다. 이 모든 것은 자율적인 활동으로 다만 상대방의 글에 대한 부정적인 비평과 문장으로 유추할 수 있는 글쓴이에 대한 사적인 평가는 금지된다. 고독한 글쓰기에도 때론 동료가 필요해 이 자리를 찾아왔다는 판타지 소설가 할아버지는 누구보다 세심하고 성실한 감상자가 되어주었다. 그의 감상평에 눈물로 촉촉이 빛나는 한 할머니의 두 눈동자가 눈부셨다. 사람들이 한 공간 안에서 달리기 하듯 제한 시간 동안 손으로 종이에 그린 문장과 그 문장을 서로에게 읽어주는 목소리엔 흐르는 세월에도 팽팽한, 허물어져 가는 육체와는 다른 방식으로 나이 드는 존재감이 온통 서렸다. 내 안에서 출발해 타인을 거쳐 내게 새로 도착한 문장은 혼자서는 도저히 나아갈 수 없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고, 그러나 거기에서도 방황은 계속될 예정이다.
선생님을 한가운데 두고 둘러앉은 우리는 전부 이민자 아니면 이민자의 자녀다. 이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겠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글감 중 하나가 Where I am from이었다. 누군가는 경찰이 자신의 이름을 아는 것이 전혀 나쁜 일이 아닌 동네에서, 또 다른 사람은 아빠가 부엌 캐비닛에 채워 놓는 캔디에서, 어떤 이는 학교 체육관 바닥에다 흘린 눈물에서 왔다고 고백했다. 나는, 지금 우리 집은 여태까지 제가 19번째로 이사해 살게 된 집입니다, 로 시작해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저는 불가피한 선택과 다시 시작한다는 흥분으로부터 온 것 같아요, 로 마쳤다. 따스한 정적 속에 공책에서 눈을 떼고 고개를 들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날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내 옆에 앉아 있던 동화 작가 할머니가 마지막 문장이 무척 마음에 든다고, 선생님은 그걸 다시 한번 읽어주면 좋겠다고 해서 그렇게 했다.
운명 지어진 한 여정에서 출발해 또 다른 여정으로 낯설게 도착하는 문장과 나를 만나 함께 집에 돌아오니 아 여기 어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