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미리미리와 크리스마스 선물

by 준혜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즈음 하가 애들 축구장 관중석에 앉아 내게 크리스마스 쇼핑은 다 했느냐고 물었다. 쇼핑 하나도 안 했어. 캐나다 달러 싼데 몬트리올 가서 하지 뭐. 이 대답을 끝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하의 침묵과 함께 우리 대화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그다음 주 같은 축구장에서 하는 내게 햄버거 모양 향초와 다크 초콜릿이 담긴 쇼핑백을 건넸다. 앗, 고마워. 하가 의미한 크리스마스 쇼핑이란 주변 사람들에게 나눌 감사와 애정이었고, 내게 크리스마스 쇼핑은 개인적인 필요를 채우고 욕구를 해소할 소비일 뿐이었던 것이다.

그때를 떠올리면 여전히 귀 뒤가 다 뜨거워진다. 어쩌면 이렇게도 나 밖에 모르는 생활을 일구어나가는 걸까, 스스로를 몰아붙이기엔 때마다 애들 학교 선생님 선물 관련 이메일을 받으면 꼬박꼬박 적당한 금액의 돈 보내기를 잊지 않았는데, 아. 가만히 생각해 보니 서로를 각자의 일상에 들이기로 선택할 수 없어 의무적이기만 한 사이가 아닌 이상 이런 기념일에만 때맞춰 선물하는 건 예의가 주인공인 연극 같다. 하와 내가 사소하게 아무 날에나 주고받은 음식과 사물의 자연스러움과 비교해 보면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극에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인간으로 유지하는 법 아니겠어, 란 결론에 다다라. 아무래도 크리스마스는 내게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문화, 어린 시절 영화 나 홀로 집에로부터 받은 충격을 넘어서는 경험이 필요한 날일지도.

올해는 11월부터 하를 위한 크리스마스 쇼핑에 돌입했다. 온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선물보다는 오롯이 그가 차지할 수밖에 없는, 왜냐하면 어차피 다른 식구들은 평소에 하가 잘 챙길 테니까, 그런 품목을 고민했다. 올리브영앱을 깔고 온갖 다양한 마스크팩과 선스크린 사진 속을 헤매다 겨우 한 가지씩 골랐다. 하가 마음에 들어 하는 거 같으면 매년 크리스마스마다 화장품 선물을 하고 싶어지는, 두 눈이 엄지 손가락과 막 합을 맞춰 미쳐 돌아가는 시간이었다.

해피 할리데이즈! 일요일 오후 애들 풋살 경기가 열리는 동네 초등학교 체육관에 들어서자마자 하에게 쇼핑백을 건네며 아양을 떨었다. 그 옆에 있던 후이가 내 거는 왜 없어, 하길래 이거 너도 해, 마스크팩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날 밤 불 끈 방안 침대 위에 누워, 눈 감고 하루를 정리해 보다가 후이가 내 거는 왜 없는 거야, 장난칠 때 쇼핑백을 든 하의 손을 덥석 잡아다 그의 손에 얹어주면서 네 거 여기 있잖아, 했으면 내가 이긴 기분이 들었을 텐데, 같은 생각을 하는 나를 도저히 뜯어말릴 수 없는 밤이 편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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