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새해와 감기

by 준혜이

몬트리올에 다녀왔다. 오래전 남동생과 함께 한국을 떠나 맨 처음 외국 생활을 시작한 도시, 두꺼운 외투 차림에 털모자를 쓰고 장갑을 낀 채 현관문을 열면 찬 공기가 맨살을 할퀴듯이 눈 코 입을 파고드는 겨울에. 그 날카로운 온도를 한숨에 들이켰다 새하얗게 내쉬면, 단숨에 콧속을 다 얼려버리는 몬트리올은 어느 하루 푹 하더니 언 빗방울이 온 동네를 탁탁 쳐대는 소리로 요란했다. 우리가 지내던 집 앞 도로는 그야말로 빙판길이 되었다. 그 길로 옆 집 아이들이 스케이트를 신고 아이스하키를 하기까지 이르고. 거실 창가에 서서 바라본 만화 같은 풍경 속에 서둘러 우리 애들을 끼워 넣자 이런 몬트리올은 또 처음이네. 이렇게 한 계절의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우리 네 식구는 무리했다. 그 탓에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우린 서로 비슷한 증상의 감기를 돌림 노래처럼 얼마 남지 않은 휴일 내내 앓게 되었다.

언제나 바라왔다.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술에 취해, 그게 아니라면 그 무엇에라도 취해 다가오는 새해를 개망나니인 채로 외면하고 싶다고. 거의 망한 상태로 한 해를 시작해 점점 나아지는 나날만을 새로 맞이하겠다는 장난 같은 이 소원을 올해는 온 식구가 타이레놀과 모트린을 교차 투약하는 가운데 정신없이 이루고 만다. 엄마, 목 아파. 콜록, 배 아파. 나, 머리, 콜록콜록, 아파, 엄마, 엄마. 아이들의 열띤 호소로 빈틈없던 하루가 저문 뒤 몸져누운 방 안에선 코가 막힌 남편의 숨소리가 한밤중 낭떠러지 같은 잠 속을 흠칫거리며 자주 가로질렀다. 그래도 우리는 감기약과 수면 부족에 만취한 몸으로 제 시간 안에 텔레비전 앞에 겨우 모여 앉아, 아니, 누워, 2025년이 2026년으로 그 이름을 무탈히 바꾸는 장면을 구경했다.

하루하루 계절을 지나오며 서서히 무뎌져 간 다정함과 비장함이 슬몃 되돌아왔다. 그리하여 1월 1일 00시 00분, 해마다 이 찰나의 찰나에서만 비롯되는 폭죽 같은 진심을 잠옷 바람으로 또다시 지켜본다. 이 순간 내가 아는 모든 너의 안녕을 질투 없이 바라고, 내가 잘못한 모든 너를 끈질기게 반성한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거나 가까이 있거나 변함없이 나를 아는 모든 너를, 말로, 마음으로, 말이 될 수 없는 어떤 기운으로 사랑하고 기억한다. 우리의 계획과 통제를 넘어서는 기대와 돌발로 다가올 앞으로의 나날에 첫날부터 미리 홀로 압도당하지 않도록. 아무려나, 이 긴긴 속마음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예의 바른 한마디로 간추려져 너에게, 포옹, 콜록, 카톡, 가닿을 것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부디 감기는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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