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폭풍 Kilo
집 밖을 나서는 시간이 점점 늦어진다. 아침 8시, 우리는 차를 타고 폭포를 보러 Waimea Valley에 갔다. 밤새 비가 많이 내렸는지 바다가 흙빛이다. 하와이는 아슬아슬하게 열대폭풍 Kilo의 영향권을 벗어나고 있는 중이다. 그 덕분에 날씨가 많이 덥지 않아서 아이들을 데리고 계곡을 걸어다닐 수 있었다.
계곡의 물이 바다로 바로 흘러들어간다고 직원이 말해주었다. 계곡 오는 길에 본 흙탕물 바다의 시작이 여기 있다.
폭포까지 1km 정도 걸어야한다. 폭포가는 길에 둘러볼 나무와 꽃 자리까지 더하면 우리가 얼마나 많이 걷게 될 지 확실하지 않았다. 계곡 길에 들어서자 금방 딸아이가 앵무새처럼 재미없다는 말을 반복한다. 딸아이에게 계곡지도를 쥐어주고 도라가 되어 우리를 폭포까지 안내해달라고 했다. 우리가 딸아이보다 앞장서서 걸으려고 하면 딸아이는 우리더러 자기 뒤를 따라 걸으라고 야단이었다.
떨어진 꽃잎에서도 좋은 향기가 난다. 꽃들에게는 개미가, 우리에게는 모기가 간질간질 정다운 계곡길 산책이었다.
숲에서 길을 잃는 이야기나 모험이 펼쳐지는 숲 이야기는 나무가 사람에게 뿌리내리는 방법인 것 같다. 우리보다 먼저부터 나중까지 이 세상에 자리하는 나무 곁을 우리는 눈을 크게 뜨고 지나간다. 우리 안에 나무가 뿌리내려 우리가 숲이 될 수는 없으니까.
며칠 전 남편의 친구들은 이 폭포 아래에서 수영을 했다. 우리는 흙탕물이 된 폭포를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커피가, 초코렛 우유가 내려온다는 말로 딸아이를 웃겼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바닷가에 내려서 바다거북이 파도 타는 것도 구경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하루에는 반전이 있다. 아침에 마른 기침을 하던 둘째가 오후가 되자 가래끓는 소리를 낸다. 하와이에서 남은 날들을 걱정으로 보내기는 싫어 부랴부랴 병원을 찾아갔다. 남편이 의료보험회사 직원과 통화하면서 보험카드를 숙소 식탁 위에 두고 나왔다. 나는 지갑조차 가지고 나오지 않아 병원에서 허둥지둥거렸지만 의사가 둘째를 진찰한 뒤에 걱정할 필요없다고 했다. 그래도 혹시나 둘째의 상태가 나빠지면 병원으로 오라는데 우리 숙소에서 병원까지는 한 시간이 걸린다.
병원에 다녀오니 저녁때가 다 되었다. 딸아이는 집에 오는 길에 해피밀로 끼니를 때우고 우리는 집에 있는 걸 대충 차려먹었다. 남편은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수영을 할 생각이었지만 딸아이가 하자는대로 수건을 들고 거실을 빙글빙글 도는 게임을 딸아이가 그만하자고 할 때까지 해야했다. 남편이 내 일상의 고단함을 여행 중에 겪고 있다. 여행이 끝나면 남편이 나를 더 이해하고 잘 돌봐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집에 가면 우리는 다시 각자 편할대로 생활하게 될 것을 잘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