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빈 손 쇼핑

by 준혜이

지난 주 금요일부터 이번 주 월요일까지 Labor day weekend 라서 딸아이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남편은 월요일만 쉬었다.

하와이에 다녀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우리는 차를 빌려 Pennsylvania, Hershey park에 다녀올 생각이었다.

토요일 아침 딸아이는 일어나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한마디 하더니 토를 하기 시작했다. 밤새 먹은 게 없으니 물을 토하고 나중에는 노란 위액까지 토해냈다. 우리는 서둘러 병원에 갔다. 의사는 Stomach Bug 라는 진단을 내렸다. Stomach Bug라는 말을 처음 들어본 나는 웃을 상황이 아닌데 웃었다. 딸아이는 3,4일 후면 저절로 괜찮아지겠지만 수분섭취에 신경써주라고 의사가 말했다. 고열증상이 있으면 병원에 다시 와야한다고도 했다. 다행히 딸아이는 병원에 다녀오자마자 다 나은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토요일은 딸의 요양을 도우며 온 가족이 집에서 뒹굴거렸다.

일요일에 남편은 갑작스럽게 출근을 했다. 딸아이, 둘째와 나는 아는 언니 식구들과 쇼핑몰을 돌아다니며 남편이 퇴근 할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이 날 아는 언니의 시어머니가 평생 처음으로 귀를 뚫었다. 서른 살이 된 기념으로 귀를 뚫으려고 했던 내 계획이 겁이 나서 실패한 기억이 났다. 내 노년의 작은 일탈을 위해서 귀를 뚫지 말아야겠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보카도와 남편의 양복을 사러 가야한다고 큰 소리로 선언하고 나는 아이들을 일찍 재웠다.

월요일은 아침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zipcar를 빌렸다. 우리는 일요일 밤 애들이 자는 사이 영화를 봤다. 그래서 늦잠을 자고 말았다. 차에 탄 시간은 11시. 한 시간 요금을 그냥 날렸다. Palisade Park 대명관에서 냉면을 먹고 근처 쇼핑몰에서 남편 양복을 골랐다. 양복을 계산대로 가져가자마자 점원이 이 양복은 40%세일 상품이 아니라고 했다. 우리는 분명 40%세일 표시가 붙은 곳에서 옷을 골랐는데 어이가 없었다. 결국 남편이 큰소리를 냈다. 남편은 시간이 돈인데 여기서 시간낭비를 해버렸다며 분노 섞인 박수를 쳤다. 남편 말이 틀린 건 아니었지만 나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이럴 바에야 차를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가 필요한 시간만큼 돈을 내고 빌려쓰는 게 경제적이긴 하지만 정신 건강에는 해롭다. 시간이 돈인 걸 잊어버릴 수 없게 하니까 말이다. 우리는 돈을 더 지불하고 5시까지 차를 빌렸다.

양복을 사지 못한 채 H mart에 갔다. 쌀을 사고 수박도 사고 차를 빌린 김에 온갖 무거운 장을 다 보았다. 계산만 하고 집에 가면 되는데 마트 안에 화재경보가 시끄럽게 울렸다. 밖으로 나가 대피하라는 방송이 한국말로만 나와서 장을 보던 외국인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우리는 별 일 아닐꺼라 생각하고 카트를 계산대 주변에 세웠는데 고무타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애들을 잘 챙겨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우리는 그 길로 차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하루종일 돌아다닌 우리가 빈 손으로 집에 돌아가는 게 너무 웃겼다. 어려운 일이 아니었는데도 우리 생각대로 된 일이 하나도 없다. 우리는 차 안에서 우리의 상황이 지금과 달라질 수 있었을 모든 '만약'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양복을 사지 못하고 주차장으로 가는 길에 들린 가게 마사지 의자에 누워 내가 감탄하고 있지만 않았어도 우리집 냉장고는 먹을 걸로 가득했을 것이다. 행동에는 결과가 있고 생각은 끝이 없다는 걸 잘 알게 된 주말이었다. 서로의 생각에 시비를 걸지 않으면 싸울 일이 별로 없다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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