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류연재

마른 오징어는 죄가 없다

by 준혜이

엄마 아빠가 가져온 두 개의 이민 가방에서 사람이 튀어나왔다해도 나는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나랑 딸아이가 읽을 책 몇 권, 딸아이가 좋아하는 김만으로도 충분한데 가방에서는 정체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없게 개별 포장된 수많은 물건들이 줄줄 나왔다. 바쁘게 물건 정리를 하는 엄마 아빠를 가만히 서서 지켜보던 나는 마른 오징어 한 봉지가 나오는 걸 보고 이성을 잃었다. 지난 번, 지지난 번에 엄마아빠한테 받은 마른 오징어가 냉동실에서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게 불만이었기 때문이다. 일주일 전부터 마음 속으로 그려본 엄마아빠가 있는 우리집의 풍경이 결국 내가 피하고 싶었던 나의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마른 오징어를 왜 자꾸 사들이는 거냐 따지고, 엄마 아빠의 치아가 건강한가보다고 안심하고, 나는 마른 오징어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두 번, 세 번 얘기하다가 엄마 아빠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말았다. 마른 오징어는 속초에 사는 이모가 엄마에게 선물하는 것이었다. 이 집 저 집 차를 타고, 비행기를 타고 돌아다니는 마른 오징어의 의미는 가족사랑이었다. 이모가 엄마에게, 엄마가 나에게 준 것이 마른 오징어가 아니라 돈이나 마음에 드는 옷이었다면 내가 먼저 가방 속에 들어가 엄마아빠의 짐정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뜻하지 않은 것에서도 나를 떠올리는 엄마가 이제는 나의 보살핌이 필요한 게 아닐까. 짜증난 내 목소리에 눈물이 섞이기 전에 나는 오징어를 잡아 말려먹기 시작한 사람을 욕하기 시작했다.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되고싶은 부모의 모습과 우리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 나에게 보여줄 모습이 마른 오징어일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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