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있는 습관이다. 이건 내가 방 두 개 짜리 아파트에 어른 여섯, 아이 둘이 모여있는 걸 바라보다 떠오른 가장 건강한 문장이다. 남편은 화요일 새벽에 출장을 떠났고 나와 아이들은 구경꾼이 있는 일상을 살게 되었다.
딸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나는 어느 날은 시아버지, 또 어느 날은 친정아빠랑 둘이 집으로 걸어오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얘기를 나누었다. 올해 정년퇴직을 한 이 남자들 내면의 소년은 언제까지나 소년일 것 같다.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지만 어른이 늙어서 소년처럼 살고 싶은 건 말하기 어려운 일이다.
나는 부엌일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내가 세 달 동안 꾸려온 살림이 며칠만에 달라지는 걸 참고 지켜보기 어려웠지만 달리 어쩔 도리가 없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의 서로 다른 생각이 부엌일의 진행을 방해하면 나는 인터넷 검색으로 두 사람을 다시 일하게 만들었다. 습관들의 충돌은 인터넷이 중재한다.
인터넷도 못말리는 남편과 나의 싸움은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 자란 탓도 있지만 다른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이라는 걸 나는 일주일 동안 몸소 체험했다.
아이들은 행복했다. 그래서 나의 불편함은 더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이마다 엄마가 하나씩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내가 아이들에게 하나뿐인 엄마라는 당연한 사실이 매일매일 이상하게 느껴졌지만 자랑스럽기도 했다. 나와 남편의 부모님 앞에서 내가 바로 아이들 엄마라는 걸 마음 속으로나마 내세우고 싶었던 이유는 아마 내 살림은 누구의 손에라도 쉽게 바뀌지만 아이들이 밤에 같이 자고 싶어하는 사람이 하루도 변함없이 나뿐인 게 기뻐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모든 부모님들이 각자의 집으로 돌아간 후, 나는 지나친 관심 때문에 시든 식물을 살려보려고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