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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nho Dec 26. 2015

시작이 반이다

싱가포르 진출기 1탄

2010년 11월 2일 난 결혼과 함께 고민에 빠졌다.  책임져야 할 사람이 생기면서 이직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게 됐다. 그러던 와중 우리 회사는 대기업 3사의 제의를 한날 동시에 받게 됐다. 내용은 이랬다. "싱가포르 창이공항에서 디지털 사이니지 텐더가 떴는데 함께하자" 2011년의 시작과 함께 뜻하지 않게 온 일이었다. 그 당시 매출 15억밖에 안 되는 우리 회사가 대기업 S사 L사 K사를 골라서 선택할 수 있는 참말로 웃기는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동시에 나도 이 프로젝트의 메인 PM이 되어 이직을 고려할 정신적인 여유조차 주지 않아 지금까지 남아있게 됐다. :) 아니다 사실 이날 이후 일을 즐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게 더 맞는 표현인 것 같다. 그만큼 글로벌 비즈니스는 내게 흥미진진한 일임에는 틀림이 없다. 

 다시 이야기로 돌아와서 가장 적극적이었던 L사를 대표님께서 선택을 하셨다. 처음에는 한국에서만 서포트를 했다. 제안서 만들어주고 데모 프로그램 만들어주고.. 그러다 이야기가 좀 더 진척되자 L사에서 싱가포르에 한번 같이 가서 현지 서포트 팀과 미팅을 하는 Kick off를 하자고 했다. 그렇게 난 대표님을 모시고 처음으로 해외 출장이란 걸 나가게 됐다. 내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2년 반 동안 말레이시아에서 산적이 있지만 너무 어렸을 적 일이고, 사실 이 당시에는 영어 한마디 못했다. 내가 어떻게 대표님을 모시고 현지 파트너와 미팅을 진행하고 아니 미팅이 아니더라도 가벼운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을까.. L사 앞에서 우리 회사 망신 다 시키면 어쩌나 정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었으니 바로 영어 천재 내 아내가 있었다. 내 아내는 19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에 건너가서 26에 한국에 다시 돌아왔다. 난 아내에게 내가 가서 어찌 하면 좋을지 좀 알려달라고 했다. 그러자 내 아내는 방에 들어가더니 컴퓨터로 뭔가를 다다다다 두드리더니 내게 "이거 토시 하나 빼먹지 말고 다 외워라." 

그러면서 문서 하나를 건넸다. 아직도 구글 닥스에 저장되어 있는 그 소중한 문서를 다음과 같이 공유합니다. https://docs.google.com/document/d/1_2vqBiAxhGzOX9uiYbys95IpPCe2t4j4llPFXC5YwPY/edit?usp=sharing 

내 영어 공부는 이렇게 시작됐다. 무조건 외우는 걸로. 사실 내가  그동안 했던 어떤 영어 공부 방식보다 무식하게 외우는 게 가장 도움이 됐다. 난 지금도 그때 외웠던 문장을 가장 많이 쓴다. 요즘엔 게을러져서 새로운 문장을 안 외우는 것도 문제다. 

 어쨌든 싱가포르에 대표님과 도착하여 미팅을 진행했다. 처음 가벼운 인사부터 미팅 진행까지 막힘없이 술술 넘어갔다. 영어 듣기는 옛날에 말레이시아에서 살아서 그랬는지 그들의 강한 억양이 오히려 알아듣기 쉬웠다. 그렇게 난 지혜로운 아내 덕분에 영어 초보자인 것을 안 들킬 수 있었다. 사실 이 출장 이후 한 10번 정도는 아내가 갈 때마다 내조를 했다. 지금의 내가 이룩한 성과들은 아내 없이는 할 수 없던 것들이다. 

 미팅을 하면서 만났던 현지 파트너 업체 이름은 Hisaka라는 업체였다. 상장된 회사며 L사 패널을 리세일즈 하는 업무도 하고 있던 터라 이번 창이공항 프로젝트 텐더에도 Maintenance팀으로 참여를 하게 됐다. 히사카에 자사의 솔루션들을 보여주니 굉장한 관심을 보이며 따로 미팅을 하자고 제안이 왔다. 그 당시 Hisaka 대표와 부사장 그리고 Ngiam이라는 직원이 참여했었는데, 그 Ngiam은 훗날 우리 회사 직원이 됐다 ㅎ. 히사카는 창이공항 외에 자기들과 싱가포르에서 비즈니스를 같이 진행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다음에 따로 양사간의 심도있는 미팅을 제안해왔다. 그렇게 난 첫 해외 출장에서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뜻하지 않은 또 다른 비즈니스 기회를 얻고 거기에 그 당시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지만 훗날 우리와 함께 많은 일을 만들어낸 현지 직원까지 만나는 정말 말 그대로 "시작이  반"인 성공적인 출장을 마쳤다. 다음 이야기는 돈 없는 스타트업의 험난한 두 번째 출장 고생길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모르면 무식하게 외우면 된다. 글로벌 비즈니스도 마찬가지다.
모르면 그냥 언어건 문화건 다 외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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