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진출기 2탄
개인적으로 난 헝그리 정신이란 말을 별로 안 좋아한다. 왜냐면 없어 보인다. 난 비즈니스를 할 때는 없어도 있어 보여야 한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처음 글로벌 비즈니스를 했을 땐 정말 없었다. 앞선 글에서 설명했듯이 히사카는 우리 회사에 많은 관심을 보이며 한국에 돌아간 뒤에도 계속 이메일로 소통을 했다. 영문 이메일도 물론 처음이었는데 영문 이메일은 초반에는 아주 간단한 비즈니스 영문 이메일 책을 사서 보면서 좋은 문구를 상황에 맞게 가져다 썼다. 그리고 점점 이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상대편이 사용하는 문구들을 따라 해 보고 그러면서 실력이 늘었다. 어쨌든 히사카는 결국 우리 솔루션에 투자하고 싶다고 다시 한번 싱가포르에서 미팅을 제안했다. 그래서 대표님과 부사장님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 처음으로 다이렉트로 외국에 외국회사와 미팅을 하러 떠났다. 그리고 처음으로 영어로 된 agenda 문서를 미팅을 위해 만들었다. 물론 이 역시 아내의 도움을 받았다.
바보온달이 평강공주를 만난 격이다. :)
https://docs.google.com/document/d/1YdssGQyjz_V8n87p_9TiklOnbeOgdMmlyNv-AV2PiTs/edit?usp=sharing
(특별히 시크릿 한 내용들이 없어 어젠다 문서를 공유하니 도움이 되길 바란다.)
이제 준비를 하고 비행기를 예약하고 호텔을 예약해야 했다. 그런데 보시는 분들은 이해가 잘 안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시내 조금 바깥에 있는 그냥 그럭저럭 한 호텔에 방 세 개가 아닌 하나만 예약을 했다. 미팅을 위해서 2박 3일만 다녀오는 건데 각 방을 잡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었다. 싱글 2개에 간이침대 하나를 추가하여 세 명이서 잠을 잤다. 물론 조식 따위 넣지 않았다. -_-;;
(왼쪽은 Singapore Quality Hotel 싱글 룸 모습. 오른쪽은 간이침대.)
물론 지금은 무조건 각 방 쓴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답다.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 ㅎ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하자면, 히사카와 미팅을 마치고 우리 호텔 로비에서 간단하게 맥주를 한잔 했는데, 그쪽에서 여기 방에 대해 괜찮냐고 물어봤는데 내가 방은 나쁘지 않은데 우린 세 명이서 한방에 쓴다라고 말하기 직전에 부사장님이 말을 끊었다. 겉으로는 여기서 그러면 게이라고 오해한다고 했지만 사실 비즈니스 적으로 없어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그 당시 난 정말 이런 부분에서 초짜였다.
히사카와의 미팅을 위해 히사카 본사를 들려 탐방을 하고 본격 회의에 들어갔다. 대표인 Jackie는 딱 호남형 스타일이다. 저돌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밀어붙이는 스타일. 그리고 CFO이자 Jackie의 부인인 Jessica는 미국 명문대 행정학과를 나온 매우 꼼꼼한 사람이었다. 미팅은 대략 제키가 하고 싶다고 하면 우리는 조건을 내걸었고 제시카가 조율(거부)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못 이뤄낸 미팅이었다. 제키하고만 미팅을 했으면 금방 성사가 될 수 있었던 것을 제시카 때문에 번번이 막혔다. 기대를 품고 온 출장은 아쉬움을 남긴 채 끝났지만 그래도 가지들은 칠 수 있었다. 히사카의 인맥을 동원해 우리는 백화점 병원 등지의 고객을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중에 우리 회사의 첫 다이렉트 고객이 된 FEO도 히사카가 소개해준 곳이다.
(맨 왼쪽이 젝키, 니암, 대표님 오른쪽이 나. 그리고 보는 분들은 병원 관계자)
만일, 우리가 돈이 없어서 그 리스크를 질만한 각오가 없어서, 한 방에 같이 자기 싫어서 (-_-) 그 출장을 안 갔다면, 지금의 성과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글로벌 비즈니스를 희망하는 분들에게 조금은 덜 계산적이고 조금은 더 저돌적으로 어느 정도 자신의 감을 따라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부딪혀 보지 않으면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사무실에서 웹 서핑한 정보로 모든 걸 판단하기에는 현장의 변수와 가능성은 너무나 많다.
현장에 가보지 않고, 된다 안된다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