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프로 진출기 4탄
난 학창시절 항상 1학기 중간고사를 잘 봤다. 그리고 기말고사, 2학기 중간고사 기말고사 점점 성적이 떨어졌다. 그러다 다시 다음 학년 중간고사를 잘 봤다. 이 어이없는 순환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불변이었다. 이유는 겨울방학 때 새해 다짐을 하고 정말 열심히 공부하고 중간고사를 보고 자만에 빠져 점점 공부를 안 했기 때문이다 ㅎ. 근데 비즈니스에도 이놈의 몸에 배어있는 습관이 잘 떨어지질 않았던지, 첫 프레젠테이션을 잘 마친 후 점점 처음만큼 준비를 해가지 않았다. 그리고 결국 사고를 쳤다.
창이와 SNS 관련 미팅을 하던 중 창이에서 키오스크에서 찍은 사진을 개인 SNS 페이지에 넣어달라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지만, 난 안된다고 했다. 창이 팬 페이지에는 가능하지만 개인 페이지에 올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안된다고 했다. 첫째는 공공장소에서 아이디와 비번을 드러내 놓고 입력하는 행위 자체가 리스크이고, 두 번째는 기술적으로도 로그인 창이 뜰 때 팝업이 뜨는데, 플래시에서 이것까지 컨트롤할 수 없다고 했다. 창이는 지속적으로 요청을 했고, 난 절대 안된다고 했다. 하지만 비즈니스와 프로그램에는 절대란 말이 적용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간과한 나의 오판이었다. 정확하지 않은 건 내부 미팅을 하고 나중에 알려주겠다고 하고 유들 있게 넘어가면 될 것을 그 당시에는 뭐가 그렇게 잘났다고 그 자리에서 절대 안된다고 했는지.. (I`ll have an internal meeting with our R&D team and let you know soon.) <= 그냥 이렇게 하면 될 것을..
이 일로 초반에 닦아 놓은 내 이미지에 많이 먹칠을 했다. L사에 어떤 분도 툭하면 나 놀릴 때 이 일을 끄집어낸다..-_-;;
"비즈니스에 절대는 없다." 이 제목에 맞는 일화를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싱가포르에 새로 생기는 Jurong Health 프로젝트에 피티를 2014년 말했었다. 이 프로젝트 규모 자체도 굉장히 큰 중요한 프로젝트였다. 그 당시 분위기가 너무 좋고 담당자가 나와 계속 긴밀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 프로젝트는 무조건 너네가 될 거다 그러니 빨리 준비해달라고 했다. 밤늦게까지 현지 담당자가 견적 레고를 하면서 너네에게 주기 위해 이 밤에도 전화를 하는 거라고 하면서 그냥 무조건 되는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결국 발표가 나왔는데 우린 떨어졌다. 정말 이 날은 너무 어이가 없었고, 하루 종일 힘이 빠지는 하루였다. 내부에다가도 이건 무조건 되는 거라고 그렇게 자신 있게 얘기했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맞으니 정말 멘붕이었다. 나중에 담당자에게 들어보니, 모든 점수에서 우리 회사가 위였는데 단 하나를 통과하지 못했다고 한다. 바로 재무제표 안정성. 싱가포르 지사가 설립된지 얼마 안 됐다 보니 자본금도 적고, 재무제표 상황도 그리 좋진 않았었다. 이렇듯, 비즈니스에는 어떤 변수가 생길지 모른다. 최근에는 이런 비슷한 경우가 한국에 있었는데, 실무진에서는 말이 다 끝난 상황이었는데, 대표 보고 때 대표가 난 저게 맘에 들어 그래서 까인 적도 있다.
비즈니스를 할 때 나 자신의 언어뿐 아니라 고객의 언어에서도 절대란 말은 아무쪼록 믿지 않는 편이 좋다. 항상 열려있는 자세로 어떤 일도 생길 수 있다는 마음가짐을 안고 미팅에 들어가야 하며 피티에 임해야 한다. 내가 아는 것이 언제나 전부는 아니고 고객의 소리가 언제나 100프로 맞는 것이 아니다. 고객에게 정답을 준다고 해서 그게 진짜 정답이 아닐 수도 있다. 비즈니스에 절대가 없다는 말은 정답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정답을 맞추려고 하면 할수록 멀어질 수도 있다. 내가 경험한 성공적인 비즈니스는 고객과 내가 동일선상에서 서로 공감대가 점점 형성되어 제대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그때는 정답이 없어도 이길 수 있다.
절대보다는 공감대에 집중해야 기회가 더 많이 생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