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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ed Enabler Dec 16. 2021

4. 용기는 담담하게

시험을 앞두고 몬가 배속에서 뭉글뭉글한 기분이 올라오려고 한다. 이틀 전인데 벌써부터 긴장이라니..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스걸파'영상을 보며, '아니, 저렇게 어린 친구들이 카메라에 찍혀가면서, 본인의 실력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보인다니...

모지? 저 자신감은?' 참으로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사람들에게 보이는 일, 내가 평가받는 일에는 어찌나 긴장되고 떨렸던지...

멀쩡히 잘 보던 모의시험, 학교 시험이었는데, 결정적 날이 되니 예상할 수도 없는 점수와 결과들을 받고 말로 표현 안 되는 좌절감을 느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게 더 나를 작게 더 작게 만들었었는데...


과거의 나를 누르고 있던 그 경험 속에서 빠져나오길 결심했던 이후에도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서 얘기를 해야 할 때면 입속이 바짝바짝 마르는 건 떨쳐버리기 힘들었다.


다 있는 자리에서의 토론은 다소 사나울 정도로 거침없는데 막상 '니 차롑니다'하면 버쩍버쩍 입부터 마르더라니...

인간의 종이 다른 것을 나를 못난 취급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이를 깨고 또 깨자 했던 것은 나의 스승님이신 아드님 때문이었다. 스승님께서는 매번 우매한 어미를 몸소 나서 가르침을 주시는데 이번에도 역시나!


"쟤만 자기소개 안 했어요! 28명  다 했는데!" 지나가던 아이가 우리 아이를 아는 척하며 학기 초에 한 말로 나는 어찌나 놀랐던지... 아니 이걸 놀랍다고 표현해야 하나?

우려가 현실이 됐을 때 드는 감정을 뭐라 하드라...


'너 혹시 학교에서 자기소개 안 했어?' '응' 왜 말했냐 하니 '그냥'이라는 대답 속에 고구마 얹힌 속마음으로 이리 굴려 저리 굴려 겨우 답을 들었다


너무 떨렸어, 미리 얘기 안 해주고!


맙소사! '안녕! 잘 부탁해! 가 뭘 더 준비해야 잘 나오는지... 그와 동시에 그 떨림이- 매우 안타깝게도 너무 이해된 나는 아무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날 저녁에 '오늘 자기소개 안 해서 아쉽지 않아?' 했더니 아쉽단다. '그럼 돌아가며 우리 자기소개나 해 보까?'

아이는 급 화색을 띄며 자기부터 해보겠단다. 그러면서 술술 자기를 소개하는데 '와! 잘한다. 앞으로 그렇게 하면 되겠다. '라며 호들갑스레 칭찬해주었다. 아이고 이놈아...


내일 가서 다시 해본다고 말해 보까?


'응? 할 수 있겠어?' '응! 나 말할 수 있어'

혹시나 선생님께서 안된다고 하셔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니 실망하지 말라는 말을 덧붙이며, 그래 한번 해보라는 부담스럽지도 실망스럽지도 않은 적당한 응원으로 그 날의 방구석 자기소개를 마무리했다.

그 다음날 아이는 혼자서 뜬금없이 반 아이들 28명 앞에서 자기소개를 확. 실. 히. 하고 내려왔다.

아니?...내 머리속에 떠오르는 간단히 비교 공식으로는 꽤 아이러니한 순간이였다.

28명과 함께 뭍혀서 하는 자기소개 용기 << 그 다음날 굳이 따로, 다 끝난 자기소개를 혼자 하는 용기

이 친구...참 알 수 없구먼.




스승님께서 몸소 보여준 이번 일은 나에게 2가지 교훈을 주었는데,


이 굴레를 내가 깨어 보여주어야지!


떨림을 접고 자신 있게 당당하게 도전하고 내 표현하는 모습을 '엄마로서 앞장서서 먼저 밟아줘야겠다.' 아무 일 아니라는 듯이! 괜찮다는 듯이!라는 다짐과 함께,


또 다른 하나는,

스승님은 역시 나보다 낫구나.


9년생 꼬마의 담백한 용기를 보면서, 43년생의 엄마는 이렇게 또 배다.


'하면 하는 거지. 시간이 걸리더라도 하면 해~ 연습했으니, 준비했으니 나는 할 수 있지'


10개월 준비 기간 속에 부심도 있었고. 깨달음도 있던 만큼이나 그에 따른 좌절도 겪은 지금 이전과는 또 다르게 성장했음을 체감적으로 느낀다. 이미 얻을 건 얻었다.


이런 노력 속에 성장한 나를 자랑스러워하며, 새로운 도전을 이전 과는 다르게 좀 더 과감스레 하는 나에게

'이야~ 진짜 너 점점 더 멋져진다. 이번 시험에서 그동안 알게 된 걸 담담히 보여주고 와! 네 실력 어디 도망 안 간다.'

라며 호들갑스레 칭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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