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사(天皇寺)의 적요(寂寥)

전북 진안군 청천면 천황사

by 황하

익숙한 길은 산 그림자 따라 어둑해져 와도, 그 길 위에 혼자있어도 두려움보다는 아늑함이 먼저 든다. 이 또한 길 위에서 부대낀 오랜 세월에 대한 익숙함 때문일지 모르겠다. 무주에서 진안을 이어주는 30번 국도가 내게는 익숙한 여러 길 가운데에 한 곳이다. 그 길이 이어주는 샛길 자락 산 마을에서 태어났고 수 십여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무수히 오갔던 길이니 당연하리.


용담호를 가르며 한적한 30번 국도를 따라 진안으로 가던 길, 늦은 시간 푯말만 보고 무작정 찾아든 구봉산 자락의 천황사(天皇寺), 때마침 저녁예불 시간이어서 경내에 청아한 스님의 독경소리가 가득하다.


열려있는 어간 문 사이로 법당 안을 보니 스님 한 분과 노보살님 한 분, 이렇게 두 분이 단출하게 예불을 올리고 있다. 까치발로 슬며시 들어가 정좌를 하고 지긋히 눈을 감는다.

IMG_0248.JPG



적요寂寥

고요하다고 그저 고요한 게 아니다
새들은 지친 날개 잠시 접었을 뿐
바람은 목 꺾인 전나무 가지 끝
잠시 매달려 있을 뿐

미동 없다고 생각마저 끊긴 게 아니다
굳은 가부좌 풀어낼 겨를 없이
망상은 팥죽 끓듯 들끓고
안과 밖의 경계에서 눈 까뿔만
파르르 떨고 있을 뿐

적적하다고 여여로 운 게 아니다
고삐 풀린 마음자리 두꺼비 마냥 날뛰고
너에 대한 내 마음은 이미
산문 밖을 나선 지 오래
그러든 말든 처마 끝 풍경은
꾸벅 졸고 있을 뿐.


IMG_0253.JPG
IMG_0259.JPG



예불이 끝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절은 다시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간간히 들리는 새소리와 밥값 하겠다고 컹컹대는 강아지 소리만 적막을 깰 뿐 절은 넓고 한적하다. 오체투지 횟수가 50여 회를 넘으니 그제야 폐부로부터 오르는 갸녀린 숨소리가 올라온다.


어둠이 삽시간에 내려앉고 사물도 또한 삽시간에 미동을 멈춰 서버린 천황사 경내, 굳이 공부하기 위함이 아니래도 이곳에 들어와 세상 시름 내려놓고 그저 며칠쯤 무념무상으로 바람처럼 머물다 갔으면 참 좋겠다.


돌아서 나오는 길 동강 나 허리 잘린 고목이 그래도 위엄스럽게 절집을 지키며 잘 가시라 마중한다.



#황준호와떠나는달팽이여행 #달팽이여행 #애니투어 #느티나무클럽 #달팽이 #천황사 #진안천황사


*천황사(063.432.6161)는 전북 진안 정천면 구봉산 자락에 있다. 금산사의 말사이며 창건 연대가 신라시대이니 유서 또한 깊은 절이다. 절 입구 우거진 숲길이 일주문을 대신하고 있고, 마당 앞 허리 잘린 800년 고목이 사천왕을 대신하고 있다. 부속암자 남암 앞에 있는 수령 400년 된 전나무는 천연기념물 제 495호로 지정된 나무로써 그 크기와 아름다움이 우리나라 전나무 가운데 으뜸이라고 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추억 깃든 마이산에 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