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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나무 숲길 그 끝, 내소사(來蘇寺)

부안 변산 내소사-201510

by 황하


내소사(來蘇寺)에 오르다!

내소사(來蘇寺)에 오른다. 사실 내소사는 오른다기보다는 걷는다라는 표현이 맞을 거다. 산속 깊이 들어있는 절들과 달리 내소사는 산중이 아닌 산이 시작하는 대지와 산의 경계에 들어서 있기 때문이다.


절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호객행위로 왁자지껄한 기념품 가게와 식당들을 지나야 한다. 다행스레 가게들 끝 즈음에 곧바로 일주문이 서 있다. 승과 속의 확연한 경계를 이뤄 다행이다. 경계 밖에서는 사람들을 현혹하는 갖은 음식 냄새가 이른 아침부터 진동한다. 일반 속인들이야 그렇다 치고, 이 길을 늘 오가는 내소사 스님네들은 세속의 유혹을 참아내야 하는 고통도 만만치 않을 거라는 괜한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경계를 벗어나면 이내 고요한 전나무 숲 길이 이어진다. 이 숲길은 몇 발자국만 걸어도 저절로 평정심을 되찾을 수 있을 만큼 빼곡하고 아늑하며 청정하다.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되기도 한 내소사 전나무 숲길은 여행자들이 오래 머무르고 싶은 여행지 가운데 한 곳으로 선정될 만큼 숲이 주는 풍경이 특별하다.




1,400여 년 역사의 내소사

'無'자 화두를 잡고 면벽 좌선(面壁坐禪)을 하든, 묵언안거를 들든 그리하여 한 소식을 만났다면 그 감흥은 어떠할까. 언저리도 가보지 못한 중생은 내소사 법당 한편에서 백팔배 겨우 올리고 법당 밖으로 떠밀리듯 나와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이곳저곳 절집을 기웃거려 본다. 조선시대 지은 목조 건축물 가운데 가장 아름답다는 대웅보전(大雄寶殿) 꽃창살 아래서 한참을 머무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연꽃과 국화꽃을 화사롭게 조각해 놓은 꽃창살은 법당 안과 밖에서 보는 위치에 따라 그 그림자가 달리 보인다. 특히 내소사 대웅보전은 못 하나 쓰지 않고 오로지 나무만 이용하여 지은 건축물로 보물 제291호로 지정되었으며, 1.633년 조선 인조 11년 지었다 하니 곧 4백여 년이 다 되어가는데도 단청만 색 바랬을 뿐 건물은 여전히 위풍당당하게 서있다.



절은 1,400여 년 동안 명맥을 유지해 오며 무수한 고승 대덕을 배출하였다. 그것을 증명하듯 경내에는 대웅전과 나란히 조사 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아름드리나무와 이끼 낀 석조물 등에서 세월 묵은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내소사에는 종각이 두 곳 있는데, 하나는 고려 시대 제작한 고려 범종(보물 277호)을 봉안해 놓은 보종각(寶鍾閣)이고 또 하나는 범종(梵鐘)을 비롯하여 법고(法鼓), 목어(木魚), 운판(雲版), 등 사물(四物)이 함께 있는 범종각(梵鍾閣)이다. 보종각에 있는 고려 범종은 고려 시대 제작된 범종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종이다. 1,222년에 한중서란 장인에 의해 주조되었다고 전하며 주조 8백여 년이 되어가는데도 모양과 형태가 잘 보전되고 있다.


내소사는 천년이 넘는 고찰답게 유물이 많고 가람은 단정하다. 또한 절을 둘러싼 선인봉 자락은 절집 건물과 어우러져 사계절 내내 아름답다. 꽃들이 만발하는 봄날뿐만 아니라 녹음방초 우거진 여름은 여름대로, 그리고 가을과 겨울의 풍경은 더욱 아름답다. 전나무와 단풍나무가 어우러지고 기왓장 위로 색 바랜 느티나무 낙엽이 쌓이면 절의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가 된다. 또한 눈이 많이 내리는 내소사는 겨울의 풍경도 압권이다. 전나무와 누각들, 그리고 능가산에 눈 쌓인 설경 역시 한 폭의 수묵화로 다가온다.





결국, 내 안의 '나' 찾기

내소사 길은 명상하며 걷기에 좋은 길이다. 굳이 종교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들어가는 전나무 숲길이며 능가산 산길, 그리고 하얀 이 드러내듯 나무 사이로 보이는 능가산 바윗길을 걷다 보면 저절로 스스로를 관조하게 된다.


이렇듯 고즈넉한 내소사를 걸어볼 기회가 온다면 "잠시 휴대폰을 꺼 놓으셔도 좋습니다"라는 오래전 어느 광고 카피처럼 휴대폰 잠시 내려놓고 마음 짐 또한 내려놓고서 가볍게 걸어볼 일이다. 느릿하게 걸으며 숲길이든 절집의 풍경이든 보이는 것들과 눈 맞춤하다 보면 어느새 가벼워진 참 마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마음이 안주(安住) 하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몫이다. 하지만 내면으로부터 안주(安住) 함이 익숙지 않을 때는 마음의 눈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보이는 것들로부터 도움을 받을 필요도 있다. 어차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도, 사물을 바라보는 눈동자도 내 마음 작용의 한 단면일 뿐이다. 외적으로든 내적으로든 받아들이고 내치는 것 역시, 시시비비(是是非非) 하는 것 역시 내 안의 작용에 의해서 만 일어나는 일이니까. 내소사에서는 이러한 마음의 작용을 관찰하며 절집을 둘러보는 일도, 전나무 숲길을 걷는 일도 괜찮은 일이다. 그래서 더더욱 내소사를 둘러볼 때는 느릿느릿 걷는 게 어울리는 이유다.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에세이는 [월간 조세금융], [월간 안전세계]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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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 조계종 제24교구 본사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인 내소사(來蘇寺)는 그 창건 연대가 633년으로 백제 무왕시절까지 거슬러 간다. 내소사 주변으로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변산반도와 직소폭포, 병풍처럼 절을 감싸고 있는 능가산이 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고려 동종 등 보물급 문화재가 있고, 절 입구에 조성되어 있는 전나무숲길은 한국의 대표적 아름다운 길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내소사는 전라북도 부안군 진서면에 있다. (내소사 홈페이지: www.naesosa.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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