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春, 봄을 찾아 길 나서다(4)

섬진강

by 황하



섬진강, 그 오백 여리 길

전라북도 진안군 백운면 데미샘에서 시작하는 섬진강은 소백산맥 산허리를 따라 오백여 리 흘러 광양만에서 바다와 만난다. 모든 강이 그러하듯 또랑 같은 물줄기와 이름 모를 계곡의 물과 여러 실개천들이 합수하며 세를 불려 나간다. 섬진강도 그러하다. 진안고원 곳곳에서 물줄기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오원천을 이루고 진안 경계지대를 벗어날 때쯤 비로소 강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강은 그렇게 오백여 리를 흐르며 곳곳에 아름다운 풍광뿐만 아니라 강변에 사람들의 터전을 내어주고 그 사람들과 어우러져 많은 전설과 사연을 남겨왔다. 어느 곳이든 사람들이 사는 곳에는 이처럼 사연이 남겨지기 마련입니다. 유년의 시절 십여 년을 섬진강 변에서 보낸 적이 있다. 그때의 아련함은 지금도 여전히 남아 강은 늘 그리움의 대상으로 내 안에 각인되어 있다. 그래서 순례하듯 해마다 슬몃 섬진강을 찾아오곤 한다.


따뜻한 봄 바다를 뒤로하고 하동 지나 구례 가는 19번 국도로 들어섰다. 강 건너 매화마을에는 이미 매화꽃이 지고 새순이 돋는 듯 옅은 푸르름이 산기슭을 감싸고 있다.


나 찾다가

텃밭에

흙 묻은 호미만 있거든

예쁜 여자랑 손잡고

섬진강 봄물을 따라

매화꽃 보러 간 줄 알아라


김용택의 시 [봄날]




시리도록 눈부신 섬진강 변 꽃들의 향연

4월 섬진강 백여시 벚꽃길은 하동에서 구례로 강을 거슬러 오르든, 구례에서 하동으로 강물 따라 내리든 상관없다. 19번 국도를 따라 어느 방향으로 가든 이곳에서는 눈부시도록 찬연한 봄날을, 봄꽃을 맞이하게 된다.


섬진강 벚꽃길은 두 차례 장관을 이룬다. 하나는 꽃이 만개하였을 때 끊임없이 이어지는 꽃터널이고, 또 하나는 바람에 눈꽃처럼 꽃잎 날리는 때가 장관을 이룬다. 꽃이 피기 시작하여 만개하면 이 길은 해마다 몸살을 앓는다. 쌍계사 가는 십여 리 길도 마찬가지다. 흐트러지게 피어난 벚꽃을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드는 상춘객들로 인해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하고 만개한 꽃그늘 밑에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길 따라 늘어선 벚꽃은 작은 바람에도 꽃물 결을 일으킨다. 그러든 말든 늘 그렇듯 강물은 무심한 듯 유유히 흐르고 있다. 능수버들처럼 강가로 가지를 늘어뜨린 능수벚꽃이 바람에 꽃잎을 떨궈낸다. 일순 눈송이처럼 꽃잎이 강물 위로 스며드는데 그 모습이 아름다우며 처연하다.






그래도 꽃은 진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다. 아무리 예쁜 꽃도 만개하면 곧 지고 만다는데 화사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벚꽃은 작은 바람 한 줄에도, 빗방울에도 쉬이 꽃잎을 토해내고 만다. 지리산을 넘지 못한 바람이 섬진강 계곡으로 들어서면 꽃대궐 이루던 강가에 또 한차례 장관이 펼쳐진다. 바람에 하릴없이 떨어지는 꽃잎은 마치 함박눈 내리던 겨울 어느 날을 연상케 하고, 떨어진 꽃잎은 강물 위를 스며들거나 차나무 새순에 내려앉아 다시 꽃으로 피어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 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이 지고 있다.

-중략-


이형기 시인의 낙화(落花) 중에서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섬진강의 장관은 벚꽃만 있는 게 아니다. 백운산 넘어가던 하루해가 마지막 발광(發光)을 하거나 고요한 밤중에 섬광(蟾光)이 강변에 들면 백사장 모래는 빛을 내기 시작한다. 눈부실 정도로 반짝거리는 섬진강 백사장의 금모래, 은모래는 물결과 함께 반짝거리며 어우러져 환상적인 장관을 만들어낸다.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뜰에는 반짝이는 금 모랫빛

뒤 문밖에는 달빛의 노래

엄마야 누나야 강변 살자


소월의 시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강이 어디 또 있을까. 섬진강 대부분은 암반 위로 강물이 흐르고 있다. 구례쯤 지나면 비로소 드문드문 모래 톳이 보이기 시작하고 화개를 지나서야 제법 넓은 백사장이 나타난다. 강물은 흘러내리며 바위를 긁어내고, 물의 긁힘에 떨어진 돌은 물살에 구르고 깎이며 점점 작아져서 결국 모래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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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의 백사장 모래는 유난히 더 반짝거린다. 이는 섬진강 유역에 분포되어 있는 변성 암층 때문이라고 한다. 변성 암층은 다양한 광 물질을 함유하고 있는데 물살에 의해 그 광물질이 떨어져 나가 잘게 부서지며 모래와 섞이게 된다. 한때 사금 채취가 활발했을 정도로 섬진강 모래에는 광물질이 많아 빛을 받으면 그 반짝거림이 대단하다.


꽃대궐이 물러나고 나면 섬진강은 겨울 오던 그 어느 날처럼 다시 고요해진다. 하지만 강물은 태초부터 지금껏 그래 왔듯이 낮은 곳을 향해 흘러내리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바위를 돌고 산굽이를 돌며 새로운 사연들을 품고서 남쪽 바다를 향해서 말이다. 적당히 날씨 좋은 어느 날에 저 강이 시작하는 곳에서 강물이 바다와 만나는 곳까지 하염없이 걸어가는 일, 나의 버킷 리스트(bucket list) 가운데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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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에세이는 [월간 조세금융], [월간 안전세계]에 연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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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은 진안, 임실, 순창, 구례, 하동 등 우리나라에 얼마 남지 않은 청정지역을 지나는 강이다. 진안고원의 계곡 물들을 모아 강의 형태를 이루며 내리다가 남원 요천과 합수하고 보성강과 만나면서 강은 비로소 큰 물줄기가 된다. 강은 경사 깊은 지리산 줄기를 따라 흘러내리다가 광양에 이르러 남해바다와 하나가 된다. 섬진강의 섬진(蟾津)이란 강 이름을 한자말 그대로 해석하면 ‘두꺼비 나루’가 된다. 실제 섬진강에는 두꺼비에 대한 전설이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蟾(두꺼비 섬) 자를 두꺼비로 해석하기보다는 섬광(蟾光), 섬 백(蟾魄) 등에 쓰이는 '달'로 해석하는 게 섬진강 뜻에 더 어울리는 듯하다. 이는 깊은 밤 산 계곡 위로 떠오르는 달과 달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섬진강 변에서 만나게 되면 그 이유를 짐작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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