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春, 봄을 찾아 길 나서다(3)

경상도 통영, 남해도

by 황하



통영 부두, 그 밤거리에서


자박 대는 파도소리가

이처럼 또렷이 들리는 것은

혹은 네 곁에, 혹은 내곁에

누구도 없기 때문일 거야


이쯤이면 뱃고동 소리도

환청처럼 멀어지고

팔딱대던 어시장 난장도

파장된 지 한참 지났을 거야


길 고양이 느릿한 발소리 들리고

난간 위 졸던 갈매기

그르렁 소리까지 들리면

이 도시의 밤은 마저 깊어진 거야


그 밤거리에

혹은 네가, 혹은 내가

비척하게 걷고 있으니

외로운 건 어쩌면 당연한 거야



통영의 봄맛, 서호 시장 도다리쑥국

통영은 아름답고 멋진 항구도시다. 사계절 중 어느 계절에 와도 좋은 곳이어서 그동안 수차례 이곳을 왔었지만 올 때마다 늘 새롭고 설렌다. 동피랑 벽화마을을 어슬렁거리는 일도, 노천 활어시장에서 흥정해 보는 일도 통영에서 해볼 만한 재미다. 해안 도로를 따라 미륵도를 일주하는 것도 설레는 일이며 여객선을 타고 사량도, 욕지도를 찾는 일은 더더욱 설레는 일이다. 밤이 오면 도시는 더욱 생동감이 넘쳐난다. 어둠이 내리고 가로등 불이 하나 둘 켜지면 어디선가 금방이라도 교향악이 울려 퍼질듯한다.


미륵도의 한적한 바닷가 마을에서 하룻밤을 유숙했다. 그리고 이른 아침 서호 시장에 들렀다. 이 시기에만 먹을 수 있다는 도다리쑥국으로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살아 있는 도다리를 갓 잡아 끓여 내는 도다리 쑥국은 통영의 대표적 계절 별미 음식이다. 초봄에 채취한 어린 쑥의 향과 어우러진 도다리는 전혀 비리지 않고 시원하며 구수하기까지 하다. 자극적이지 않으며 부드러우니 속풀이 술국으로도 제격이다. 하지만 3월에서 5월 사이에만 맛볼 수 있다니 그 희소성으로 인해 해마다 이때쯤 되면 통영과 도다리 쑥국을 자연스레 떠올린다.

또 하나의 별미로는 멍게비빔밥이 있다. 갖은 야채와 어우러진 멍게비빔밥은 멍게 특유의 향내음이 입안 가득 퍼지며 진정한 식도락(食道樂)의 즐거운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이렇듯 통영은 볼거리와 먹을거리가 풍부한 도시다 보니 매번 찾을 때마다 설렐 수밖에 없다.





남해, 그리고 가천 다랭이마을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남해로 발길을 돌렸다. 남해는 우리나라에서 다섯 번째로 큰 섬이며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속한 섬으로, 이 섬 역시 금산 보리암을 비롯하여 천혜의 자연경관이 빼어난 곳이다.


다랭이 마을은 깎아지른 듯한 경사면에 들어선 오지 마을이다. 한눈에 봐도 살아내기 척박한 땅임을 알 수 있다. 눈앞이 바다인데 배 한 척 정박할 곳도 마땅치 않다. 그래서 배가 드나드는 선착장이 없다. 그저 40여 각도에 이르는 날 선 산비탈뿐이다. 이곳에 정착한 선조들은 돌로 담을 쌓아 논배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하나둘 쌓다 보니 어느새 108층의 계단과 680여 곳의 다랭이논이 만들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역사가 수백 년은 족히 된다고 한다. 조상 대대로 이곳에서 살고 있는 이들에게 다랭이논은 산 역사이자 조상의 숨결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으로 각인되어 있을 거다. 나라에서는 이곳을 명승지로 지정하였다. 인위적으로 만든 것이지만 그 아름다움과 가치가 보호받을 만하다 하여 명승 제15호로 지정해 놓았다. 덕분에 이곳 사람들은 마음대로 증축이나 변형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오래도록 보전을 하기 위해 일정 부분 개발이나 변형에 제재를 하게 된 것이다.


구불구불 이어진 내리막길을 따라 마을을 기웃거리며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와 맞닿게 된다. 남해 바다가 그러하듯 이곳 바다 역시 맑고 깨끗하다. 하지만 물결은 온순하지만은 않다. 거친 파도와 풍랑으로 깎인 기암절벽만 보더라도 이곳 물살이 거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배 한 척 정박하기 어려운 이유다.

무심결에 내려온 길을 되돌아보니 까마득하다. 이곳에 서서 위를 바라보면 비로소 다랭이마을의 모든 풍경과 그리고 병풍처럼 마을을 에워싸고 있는 응봉산 줄기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얼마나 가파른 곳에 마을과 다랭이논이 조성되어 있는지 확연하게 보인다.







늘 느끼는 거지만 자연은 감히 넘볼 수 없을 만큼 위대하다. 하지만 이렇듯 위대하고 변화무쌍한 자연에 맞서 척박한 땅을 개척하며 살아내는 사람 역시 경외스럽다. 다랭이 마을에서의 받은 느낌이 그렇다. 척박한 환경을 극복하며 살아온 이곳 주민들과 그들의 조상들에게 저절로 머리 숙여진다. 불현듯 어린 시절 깊고 깊은 산간 오지에서 화전을 일구며 살았던 내 어머니가 떠오른다. 어머니가 일궜던 화전 밭에는 이때쯤이면 망초대가 지천으로 올라왔는데, 다랭이마을 곳곳에서는 유채꽃이 지천에서 꽃을 피며 산간 오지 비탈진 곳을 밝혀내고 있다.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에세이는 [월간 조세금융], [월간 안전세계]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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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서호시장은 통영항 여객선터미널 맞은편에 있다. 서호시장 부근은 통영을 대표하는 맛집뿐만 아니라 충무김밥, 통영의 대표 간식인 꿀빵을 파는 가게가 한집 건너 한집마다 있을 정도로 통영의 대표적 먹거리 장소이다. 또한 봄이면 어김없이 판매하는 계절 별미 도다리 쑥국을 비롯하여 시락국, 졸복국 등을 이곳 서호시장에서 맛볼 수 있다.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은 남해읍에서도 남쪽으로 1시간가량 떨어진 오지마을이다. 다랭이란 뜻은 산비탈에 계곡을 따라 길게 늘어뜨린 논배미를 말하는데, 가천 다랭이는 108층 계단에 680여 개의 논이 산비탈에 촘촘히 조성되어 있다. 척박한 곳에서 살아내기 위해 한 뼘 한 뼘 땅을 일궈온 선조들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숙연한 생각마저 들게 하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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