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春, 봄을 찾아 길 나서다(2)

경상도-진해, 거제도

by 황하


只道花無十日紅(지도화무십일홍)

그저 꽃이 피어야 10일을 못 넘긴다고 하지만,


此花無日無春風(차화 무일 무천풍)

이 꽃만은 날도 없고, 봄바람도 필요 없네.

*송나라 시인 양만리의 詩 월계(月季)


송나라 시인 양만리가 쓴 월계라는 시를 보면 그 어떠한 꽃도 그저 열흘을 못 넘긴다는 내용이 있다. 이 시에서 말하는 ‘이 꽃’은 지고 피기를 달마다 한다 하여 월계화라 부르는 중국이 원산지인 장미과의 꽃이다. 양만리는 월계화만큼 오래 피는 꽃이 없다는 비유로 只道花無十日紅이라 하였다. 실제로 몇몇 꽃을 제외하고는 오랫동안 피어 있는 꽃이 별로 없다. 특히 봄꽃은 피고 짐이 더욱더 순식간이다. 필 듯 말 듯 애를 태우더니 피고 나면 이내 지고 마는, 꽃잎 날리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마는, 그래서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더 실감 나는 봄꽃들이다.

화사롭게 피기로는 벚꽃을 능가할 만한 꽃이 또 어디 있을까? 벚꽃은 가지마다 여러 꽃송이가 겹겹이 뭉쳐서 핀다. 그래서 벚꽃은 한 송이보다는 한 그루, 한 그루보다는 무리를 이룬 군락에서 피어 있는 모습이 더 화사하고 장관이다.





벚꽃의 도시, 진해

해마다 봄이 오면 나라 전체가 벚꽃 앓이를 한다. 벚꽃축제를 하는 곳이 지역마다 넘쳐나고 꽃구경 나온 상춘객들로 도로는 북새통을 이룬다. 대표적인 곳이 진해시이다. 어쩌면 진해라는 도시는 도시 전체가 벚꽃으로 에워싸고 있는 도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좌천을 비롯하여 경화역, 안민고개 등은 진해의 대표적인 벚꽃 명소들이며 이렇듯 알려진 곳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에 가로수로 조성되어 있는 벚꽃으로 해마다 4월이면 어딜 가더라도 도시는 꽃과 사람들로 넘쳐난다. 때맞춰 열리는 군항제까지 브라질의 리우 카니발처럼 도시는 한바탕 즐거운 소란을 겪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벚꽃은 꽃잎을 오래 매달고 있지 않다. 피기 시작하여 절정까지 3~4일, 시들어지기 3~4일, 그러다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속절없이 꽃잎을 떨구고 만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어쩌면 이렇게 잘 맞을까. 서글프게도 말이다. 꽃들이 시들고 나면 도시는 다시 쓸쓸할 정도로 잠잠해진다. 사람들은 못내 쓸쓸함을 견뎌내며 다시 내년을 기다려야 한다.




한려해상 거제도

인파들 틈에서 떠밀려 다니다가 도망치듯 도시를 빠져나와 거가대교 건너 거제도로 향한다. 거가대교에는 해저터널 구간이 있다. 하지만 밖이 보이지 않으니 육지 터널과 다름을 느끼지는 못한다. 이정표 마냥 해저 깊이를 적어놓은 푯말만이 해저 속을 지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거제 해안을 드라이브할 때에는 속도를 내서는 안된다. 지나치는 곳마다 경관이 빼어나지 않은 곳이 없기 때문에 서두르다 보면 놓치기 십상이다.


망치 몽돌해변

구조라항을 지나 망치 몽돌해변에 차를 세운다. 이른 봄 바다는 한적하다. 그래서 잔잔한 물결에도 몽돌에 파도 부딪치는 소리가 선명하다. 모래 해변과는 달리 몽돌해변은 온통 자갈밭으로 된 해변이다. 이 자갈들은 오랜 세월 파도에 의해 씻기고 깎여 둥글어진 몽돌들이다. 아무리 찾아봐도 모난 돌은 보이지 않는다. 가만히 귀 기울여 파도와 몽돌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어보았다. 자그락, 자그락, 자그락. 소리는 때로는 경쾌하다가 썰물이 멀어져 갈 때는 긴 여운을 남긴다. 사람들 마음도 저 몽돌을 닮았으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대립과 반목, 이기와 독선은 줄어들지 않을까. 자그락거리는 파도 소리 들으며 잠시 잠깐 생각에 잠겨본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모나게 날이 서있는 것들도 저 몽돌처럼 언젠가는 닳아지기를 소망한다. 망치 해변뿐만 아니라 거제도에는 몽돌해변이 많다. 여느 해변과는 달리 몽돌해변은 소리만으로도 여행자의 피로를 풀어주고 남는다.




신선대

신선대에 오른다. 거제 해변의 절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수백 명은 족히 앉을 수 있는 너른 바위와 마치 인위적으로 심어 놓은 듯한 바위 위 한 그루 소나무, 그리고 절벽 아래 작은 해변에서는 파도 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진다. 선정 삼매가 따로 있을까. 신선대에 오르는 순간 펼쳐지는 풍경과 들려오는 자연의 소리는 저절로 선정 삼매에 빠져들게 하였다. 바람과, 파도와, 세월이 빚어낸 거대한 조각상은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온다. 신선대로 가는 길 옆, 듬성듬성 유채가 샛노란 꽃망울 터뜨리기에 열중이다. 바람 잘날 없는 이 언덕에도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었다.





바람의 언덕

신선대 반대편에는 바람의 언덕이 있다. 산봉우리를 거침없이 흘러내려온 능선은 바다와 맞닿으며 멈춰 섰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곳이 바람이 지나는 길목이었다. 바람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도 없이 사시사철 불어댄다. 산기슭에 군락을 이룬 동백은 서로 오밀조밀 스크럼을 짠 채 바람에 맞서고 있다. 결국 언덕 위에는 나무 한 그루 제대로 자라지 못하게 되었고, 대신 그 자리에 사람들은 이국적인 풍차 한 대를 세워놓았다. 밋밋하던 언덕에 제대로 방점 하나 찍어놓은 모습이다.


언덕 아래에는 작고 아름다운 도장포마을이 있다. 해금강이며 외도로 떠나는 유람선이 출발하는 선착장이기도 하다. 방파제 마냥 에워싼 바람의 언덕으로 인해 작은 항구는 아늑하고 늘 평온해 보인다. 마치 지중해의 아름다운 어느 작은 항구도시처럼 말이다. 이곳에서 좀 더 아름다운 한려해상을 보려면 유람선을 타는 게 좋다. 남해의 쪽빛 바다와 그 위에 떠 있는 해금강은 거제 여행의 백미이기 때문이다. 해금강은 면적이 223,992㎡에 불과하지만 촛대바위, 물이 빠지면 배가 지나갈 수 있는 십자동굴 등 다양한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섬이다. 또한 풍란을 비롯하여 다양한 자생난과 약초가 많은 섬이기도 하다. 불로초를 구해오라는 진시황의 명을 받든 서불 이란 사람이 일행을 이끌고 이곳 해금강까지 왔었다는 전설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약초 섬이라 불리는 이유가 이해 간다.






이왕 유람선을 탈거라면 아름다운 정원으로 널리 알려진 외도 보타니아나 매물도를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외도 보타니아는 개인이 가꾼 정원이자 해상 식물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선인장, 야자수 등 아열대 식물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고 그 외에도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섬이다. 매물도는 행정구역 상으로는 통영시 한산면에 속한 섬인데, 매물도 전망대에서 바라보이는 한려해상의 풍경은 가히 압권이다. 천태만상(千態萬象)의 기암괴석(奇巖怪石)으로 이루어져 있는 이곳은 한려해상 여행의 대미를 장식하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해바다의 봄소식은 물빛만 봐도 봄이 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맑고 푸르던 바다는 물감을 풀어놓은 듯 서서히 쪽빛 바다로 변해간다. 그리고 바닷물이 넘실댈 때마다 잔잔한 햇살에도 물결은 반사경처럼 윤슬이 눈부시다. 그때쯤이면 육지에서는 꽃들도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한다. 남해의 봄은 이렇게 다가오고 있다.




두둥실 두리둥실 배 떠나가네

물 맑은 봄 바다에 배 떠나간다.

-중략-

가곡 [사공의 노래] 중 일부


그렇다. 고즈넉한 남해 바다 위로 유유히 배 한 척 지나가면 입에서는 저절로 노래 한 소절 나올 법 하다. 이러한 풍경이 남해에서 맞는 봄 풍경이다. 남해바다를 끼고 있는 한려해상은 사시사철 철마다 표정을 달리한다. 그래서 어느 때 여행을 떠나도 후회할 일이 없다. 하지만 겨우내 봄소식을 기다렸다면 무조건 남해로 달려가시라 권한다. 그곳에 당신이 기다리던 봄이 이미 와 있을 테니까.



*황하와 떠나는 달팽이 여행 에세이는 [월간 조세금융], [월간 안전세계]에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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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군항제는 매년 벚꽃이 필 무렵인 4월 1일부터 열흘간 열리는 우리나라 대표적 축제 가운데 하나이다. 1952년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세우고 장군의 얼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추모제가 진해군항제의 시초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해군사관학교와 해군기지사령부가 개방을 하여 영내에 있는 벚꽃뿐만 아니라 박물관 등을 관람할 수 있다.


*한려해상 국립공원은 전라남도 여수시에서부터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도에 이르는 우리나라 최초의 해상 국립공원이다. 한산도와 여수의 지명 머릿글자를 따서 한려해상 국립공원이라 명명한 이곳은 통영과 여수뿐만 아니라 거제도와 남해도의 일부도 포함되어 있는 광범위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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