尋春, 봄을 찾아 길 나서다(1)

전라도-화엄사, 담양 창평 마을, 소쇄원

by 황하


儻無勝事酬佳節(당무승사수가절)

아름다운 시절에 어울리는 그 멋진 일을 하지 아니하면,

何日浮生得展眉(하일부생득전미)

뜬 구름 같은 이 인생에 그 언제쯤이나 이맛살을 펼 수 있을까.

이용휴(李用休·1708~1782)의 시 尋春중에서


화들짝 놀랄 만큼 이치에 순응하는 자연의 존재들은 이 땅에 봄이 오고 있음을 우매한 인간들보다 먼저 알고 먼저 봄 마중을 합니다. 우리들 인간이 사는 세상은 하 수상 정도가 아닌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세상입니다. 순리를 거스리는 일은 다반사이고 죽고 죽임의 힘의 논리만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이러한 세상은 최소한 자연의 이치에도 맞지 않는 세상입니다. 그러니 봄이 오는지 계절이 변해가는지 조차도 모른 채 분탕질만 해대고 있는 거겠지요.


尋春, 봄을 찾습니다.

나는 그 봄을 찾기 위해 길 나섬에 주저하지 않는 우매한 사람들 가운데 1인입니다. 2주에 걸쳐 남도를 다녀왔습니다. 묵직하여 참 좋은 친구와 단 둘이서 이른 새벽 도착한 구례 화엄사에서 붉으스레 피기 시작한 홍매화 한그루와 한참을 사진 놀음하였고, 읍내 목화식당에서 맑은 소내장탕 한 그릇으로 추위를 녹여내기도 하였습니다. 이어 들른 담양 창평 마을, 그리고 소쇄원에서 한적하게 노닐다가 대통밥 한 그릇 먹고 어스름 내리는 저녁 무렵에 완주 상관 편백숲까지 둘러보고 돌아왔습니다.





시골 마을의 봄은 어떠할까요? 궁금증을 안고서 찾은 창평마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 지정을 받았다는 이 마을에도 봄은 오고 있었습니다. 돌멩이를 켜켜이 쌓아 올린 담벼락 너머로 매화, 목련, 산수유 등이 고개를 내밀며 무채색의 공간을 환하게 밝혀줍니다. 담은 구불구불하고 또랑 물도 담벼락을 따라 구불구불 흘러내립니다. 구부진 모퉁이를 돌아서면 누가 사는 집이 나올까 하는 궁금증이 들어 미로 속을 헤매는 것처럼 동네 안 골목을 한참이나 저절로 기웃거리게 되는 곳입니다.




아쉬움도 있습니다. 허물어지고 쓰러져가는 빈집이 많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와도 이곳에 사는 주민들에게는 혜택이나 일정한 수입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반증일 거라 어림짐작 해봅니다. 서울의 익선동, 이화마을이나 부산의 감천마을이 비슷한 사례입니다. 유명세 덕분에 관광객이 몰려들다 보니 덩달아 투기꾼들도 몰려들고 사생활은 속수무책으로 노출되어 결국 원주민들만 피해를 보는 사례들입니다. 담양 창평마을은 도심의 마을과는 사뭇 다르긴 하지만 전통을 유지해야 하는 등 보전을 위해 관리하는 데만도 만만챦을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소쇄원은 은둔한 양반의 놀음터입니다. 작은 계곡물이 흐르고 계곡 좌우로 정자와 사랑채 등 여러 건물을 조성하였습니다. 소쇄원을 들어서는 입구에는 울창한 대숲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데 세상과의 경계를 그어 놓은 듯합니다.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세상에서 전쟁이 나도 모를 것 같습니다. 이런 곳에서 한평생을 은둔하며 보냈다 하니 양산보란 사람, 한량유생(閑良儒生)이었는지, 안빈낙도(安貧樂道)한 삶을 살다 간 청빈유생(淸貧儒生)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화엄사 홍매화

남도의 봄은 어김없이 제때 옵니다. 화엄사의 홍매가 덜 핀 듯하였습니다. 찾은 이들은 실망합니다. 자연은 순리를 따르는데 꽃을 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은 여전히 성급하고 제 위주입니다. 꽃이 만개하지 않았다고 이곳저곳에서 실망 섞인 탄식과 이기가 작렬합니다. 이른 새벽 절집 마당에서 사진 찍겠다고 카메라 들이밀며 아우성치는 인간들의 단면입니다. 그러든 말든 화엄사 홍매는 피고 지기를 순리에 따라 하고 있을 뿐인데 말입니다.


화엄사 홍매는 날씨의 변덕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해마다 3월 20일경부터 피기 시작하여 3월 말까지 절정을 이룬다고 합니다. 화엄사에는 각황전 앞 홍매뿐만 아니라 수령 사백여 년이 넘은 화엄 매도 있습니다. 화엄 매는 화엄사 말사인 길상암 절마당에 있는데, 천연기념물 제485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슬로 시티 창평 마을

담벼락따라 졸졸졸 흐르는 또랑 물은 한적한 동리에 어울리게 돌담길을 따라 느릿하게 때로는 유속 있게 흐르고 있습니다. 흙담과 담너머 집들이 고즈넉합니다. 그리고 집들은 대부분 비어있습니다. 어쩌면 주말이 아니어서 그러는지 모릅니다. 찾는 이가 드물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요. 자연스럽게 산다는 거 참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저절로 듭니다. 하지만 이곳을 찾아 느릿하게 걷는 이들에게는 지절로 유유자적입니다. 담벼락 너머를 흘깃거려 보기도 하고 오래된 퇴청 마루에 걸터앉아 한시름을 놓아보기도 합니다. 물소리는 마을을 기웃거리는 내내 끊이지 않습니다. 사라졌다가도 다른 골목을 들어서면 어김없이 다시 또랑과 만나게 됩니다.


사람 사는 마을 한 복판에서 이렇듯 물소리 들으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몇 군데나 될까요? 예전에는 마을마다 흔했던 풍경인데 말입니다. 이러한 풍경이 남아있는 창평마을에서는 성격 급한 사람도 저절로 발걸음이 느려질 듯합니다. 말 그대로 슬로시티(Slowcity)입니다.





소쇄원

가진 자들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습니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 금수저를 갖고 태어난 그들은 이미 조선시대에도 있었고, 그들은 관직에 나가지 않고 소위 은둔 생활을 하면서도 풍류를 즐기며 평생을 유유자적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세우거나 집을 지어놓고 그곳에서 한 평생을 지냅니다. 대표적인 곳이 소쇄원입니다. 혹자들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정원이며 유학자들의 정신이 깃든 곳이라 칭송하지만 그 말을 쉽게 동의하기는 어렵습니다. 그 시절 그들은 과연 입구에 울창한 대숲을 조성하여 세상을 차단하고 흐르는 계곡 물소리 들으며 나라의 존망을 걱정했었을까요? 아니면 풍류를 즐겼을까요? 모를 일입니다. 뜰앞 늙은 매화나무는 알 것 같은데 모른 채 꽃 망울 터뜨리기에만 열중합니다.


자연과 조화롭게 꾸미고 가꾼 정원의 측면에서는 분명 아름다운 곳입니다. 흐르는 물을 막지 않고 자연스레 흘러내리게 하면서도 그 위에 주위와 어울리게 쌓은 담벼락이나 떨어지는 산자락에 세워진 누각들은 자연과의 어긋남 없는 조화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대나무, 소나무, 매화나무 배롱나무 등을 적절한 곳에 배치시켜 사계절 내내 심심하지 않게 만든 조경도 일품입니다.

자연과 인공을 훌륭하게 결합시킨 조선의 대표적 정원이자 풍류를 즐기던 양반들의 놀이터, 소쇄원은 바로 그런 곳입니다.




어쩌면 봄은 이미 내 안에 와 있는지 모릅니다. 다만 사사로운 생각에 늘 사로잡혀 살다 보니 스스로가 인지하지 못할 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밖에서 봄을 찾으려 할 수밖에요. 그래도 나서보니 봄은 이미 성큼 우리들 곁에 와 있었습니다. 화엄사 각황전 옆 홍매가 그러했고 창평마을 담벼락 너머 산수유가 그러했습니다. 소쇄원의 늙은 매화나무도 마찬가지고요.


아비규환 같은 세상에서 하루하루 살아내느라 힘에 겨운 일상을 잠시라도 벗어나 보시길 권합니다. 그리하여 봄볕에, 봄바람에, 봄의 대지로부터 힘찬 기운을 받아보세요. 그리고 자연의 이치에 대해 잠시 잠깐이라도 눈 맞춤도 해 보시구요. 어쩌면 지금껏 살아온 세상과 확연이 다른 새로운 세상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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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 홍매화는 화엄사 경내 각황전 옆에 있는 매화나무이다. 매년 3월 하순경에 피어나는 꽃은 그 색이 검붉어 홍매화 또는 흑 매화라 부르기도 한다. 꽃의 절정은 아침 햇살이 오를 무렵 역광이 드는 시점인데, 마치 수많은 전구에 불이 들어오듯 화사롭고 신비롭기까지 하다.


*슬로시티(Slowcity)는 전통문화와 자연을 보호하면서 느림의 삶을 추구하자는 국제운동기구이다. 1999년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으며 현재 30개국 225개 도시가 가입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슬로시티는 아시아 최초로 지정된 전남 3개 지역 담양군 창평면 삼지천 마을, 완도군 청산도, 신안군 증도를 포함하여 경남 하동군 악양면(차 재배지로서 세계 최초), 충남 예산군 대흥면, 전주 한옥마을, 남양주시 조안면, 청송군 부동ㆍ파천면, 상주시 함창ㆍ이안ㆍ공검면,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충북 제천시 수산면 등 11곳이 있다.


*소쇄원(瀟灑園, 명승 제40호)은 1530년경에 양산보(梁山甫, 1503~1557)가 조영한 별서(別墅) 원림, 즉 정원이다. 양산보는 그의 스승인 정암 조광조가 기묘사화로 세상을 뜨자 낙향하여 이곳에 정자와 누각을 짓고 평생 은둔자의 삶을 살아간 곳이 소쇄원이다. 소쇄원은 보길도에 있는 부용동 원림과 함께 자연과 인공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조선시대 대표적 정원으로 손꼽히고 있다.

(참조: 네이버 지식백과, 한국 슬로시티 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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