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동 돼지갈비 기사식당
90년대 초, 군대를 갓 제대하고 입사한 첫 직장이 작은 출판사 영업부 일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출판사 영업부 일이란 게 다람쥐 쳇바퀴 돌듯 같은 업무를 날마다 반복하는 일이었습니다.
아홉 시 출근, 주문장 확인하여 박싱(Boxing)을 하고 배송트럭 오면 출고한 후 교보문고를 필두로 영풍문고, 지금은 폐업한 종로서적, 그리고 을지로 입구에 있던 을지서적까지 매장을 둘러보는 게 하루의 일과였습니다.
연속으로 반속 되는 일이 지루할 만도 했는데, 나름 그 일이 즐거웠던 이유는 책을 원 없이 볼 수 있다는 것과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게 아니라 매일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선배들과 함께 점심때가 되면 뭘 먹을까 고민하며 메뉴를 찾아 어울려 다니던 일이 재미났습니다.
내수동 골목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종로 1가 피맛골 골목을 비롯하여 견지동 일대 식당 골목을 늘상 헤집고 다녔고, 때로는 광장시장에서 식사 대신 아바이순대에다 막걸리를 마시기도 했습니다. 수년 동안을 그렇게 다녔으니 웬만한 식당들은 두루 섭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요.
성북동 기사식당인 돼지갈빗집도 그 무렵에 즐겨 찾던 곳입니다. 아마도 출판계 지인들과 가장 많이 들른 식당 가운데 한 곳이 성북동 돼지갈빗집이었을 겁니다.
당시 즐겨 찾던 식당들 가운데 지금은 사라진 집들도 많고 개발에 밀려 이전을 한 곳도 많습니다. 하지만 성북동 돼지갈빗집은 여전히 같은 곳에서 그때의 맛을 유지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여러 식당들 가운데 유달리 이 집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이 집만의 독보적인 맛 때문이었습니다. 한때 편식이 심했던 내 입맛에 연탄불에 직화로 구운 돼지갈비 맛은 다행히 잘 맞았고, 그래서 20여 년 넘게 단골이 되었지요.
떠도는 말 중에 기사식당들 가운데 성업 중인 곳이라면 무조건 믿고 가도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운전을 업으로 사는 운전기사들에게 시간은 돈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그러다 보니 밥 한 끼 제대로 먹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 착안하여 80년대 무렵 생겨나기 시작한 게 기사식당이라는 업종입니다. 주차할 수 있는 주차공간과 빠른 서비스, 간편하게 먹을 수 있으면서도 맛까지 있는 음식을 내놓는 기사식당은 이처럼 바쁘게 사는 운전기사들에겐 최적의 식당이자 휴식처였습니다.
최근의 기사식당들은 찌개 종류의 음식뿐만 아니라 돈가스, 돼지불백 등 메뉴도 다양하고 주문 후 5분이면 손님상에 올려질 정도로 빠르고 푸짐하며 맛도 뛰어납니다. 그러다 보니 요즘에는 식사시간 무렵이면 운전기사들 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기사식당을 많이 찾고 있습니다.
성북동 돼지갈빗집은 서울에서 널리 알려진 대표적인 기사식당입니다. 그 명성은 40여 년을 훌쩍 넘어 지금도 성업 중입니다. 비결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질 좋은 국산 고기를 직접 들여와 양념 숙성 후 연탄불에 구워서 1인분씩 개인별로 내놓습니다. 찬으로 나오는 마늘이며 젓갈, 그리고 쌈 재료까지 국산 가운데서도 품질 좋은 것으로만 고집합니다.
특히 고기를 연탄불에 직화로 구워내니 특유의 훈제맛까지 가미되어 맛은 배가됩니다. 쌈과 마늘 무침, 그리고 직화 고기와 시원한 조갯국이 잘 어우러집니다. 음식궁합이란 말이 잘 어울리는 조화입니다. 이러한 점들이 한 자리에서 오랫동안 사랑받고 유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십 대 시절 선배들과 어울려 다니던 이곳을 지금도 종종 시간 내어 아이들과 함께 오거나 지인들과 함께 찾기도 합니다. 사는 곳이 서울의 서남쪽 변방이다 보니 거리가 멀어 자주 들르지는 못하지만 어느 땐 불현듯 생각나면 한달음에 달려가기도 합니다. 갓 지은 밥 한 숟갈에 알싸한 마늘 무침과 불향 가득한 돼지고기 한 점을 싱싱한 상추에 얹어 먹으면 입안 가득 퍼지는 풍부한 그 맛을 잊지 못해서입니다.
성북동 기사식당을 찾는 또 다른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이곳에 오면 아련한 추억들이 되살아 나서입니다. 아이들이 커오던 모습도, 내 모습의 변화도, 그리고 소식 끊긴 옛 동료들의 아련한 얼굴들도 이곳에 오면 다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눈 깜빡할 사이 흘러버린 세월 속에 이십 대의 젊었던 청년은 어느덧 지천명을 넘긴 나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아장아장 따라다니던 막내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더니 이제는 내 키와 나란해져 갑니다.
조만간 아이들과 함께 성북동 이 집을 다시 찾아야겠습니다. 아이들도 나처럼 지난 시절을 떠올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불향 가득한 돼지갈비를 맛있게 먹었던 그 맛은 잊지 않았을 거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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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북동 돼지갈빗집(02.764.2420)은 성북동 쌍다리 마을 부근에 있다. 우리나라 기사식당의 원조라 할 만큼 50여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연탄불에 바로 구워 내놓는 돼지갈비 백반과 불고기 백 반등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