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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Sep 16. 2017

남해 죽방렴 그리고 죽방멸치

경남 남해군

멸치는 오래전부터 우리네 식탁에서 빠지지 않는 식재료입니다. 음식을 만드는 데 있어 메인으로 쓰이는 재료는 아니지만 육수를 내거나 젓갈을 만들거나 또는 간단한 반찬거리로 유용하게 쓰이는 생선입니다. 특히 국물요리를 만드는 데는 다시마와 더불어 빠지지 않는 게 멸치입니다. 단순 재료만으로는 어딘가 부족한듯한 국물요리에 멸치를 넣으면 감칠맛이 우러나면서 담백하니 '간'이 맞아지기 때문입니다.

이런 멸치에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영양분인 단백질과 아미노산, 그리고 칼슘이 풍부합니다. 지혜로운 우리네 조상들은 일찍이 멸치의 효능을 알고 다양한 식재료로 활용하여 부족하기 쉬운 영양분을 보충해왔던 겁니다.


멸치는 크기에 따라 구분을 합니다. 지리멸, 소멸, 중멸, 대멸 그리고 잡는 방식에 따라 유자망(流刺網) 멸치, 정치망멸치, 죽방멸치 등으로 구분하여 부르는데, 그 가운데 고유 전통방식인 죽방렴(竹防簾)으로 잡는 죽방멸을 으뜸으로 치고 있습니다. 이유는 죽방렴이란 어업방식에 있습니다. 유자망 멸치는 잡는 과정에서 그물에 걸린 멸치를 털어내야 하므로 비늘이 벗겨지거나 상처가 남게됩니다. 하지만 죽방렴은 조수 간만의 차가 큰 바다에 말뚝을 V자 형태로 나열하고 그 끝에  대나무를 원통형으로 촘촘히 그물 엮듯 통발을 만들어 잡는 방식으로서, 비늘이 덜 벗겨지고 상처 또한 덜 받는 데다가 대량포획이 아니어서 희소성과 신선함이 뛰어납니다. 해서 죽방렴으로 잡힌 고기는 멸치뿐만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 역시 최고의 상품으로 대접을 받고 있습니다.






조수 간만의 차가 큰 서해나 남해안 일대에서는 오래전부터 이러한 어업 방식으로 조업을 해왔고, 그 명맥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 남해와 창선도 사이 지족해협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전부터 죽방렴으로 고기를 잡던 곳입니다. 문헌에 기록된 역사만으로도 족히 500여 년이 넘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남해안은 섬들이 촘촘하게 밀집되어 있는 지형입니다. 또한 조수 간만의 차가 크다 보니 섬과 섬 사이를 오가는 조류 또한 유속이 빠르고 거셉니다. 지족해협이 그러한 곳입니다. 물길이 좁고 물살은 빠르며 수심 또한 깊지 않으니 죽방렴 설치에 최적의 장소입니다. 지금도 이곳에 가면 바다 곳곳에 설치된 죽방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죽방렴으로 잡히는 물고기는 어종이 다양하지만 그중 멸치가 가장 많이 잡혀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를 일컬어 죽방멸이라고 합니다. 물살이 세기로 유명한 지족해협을 오가는 멸치들이니 크기도 크지만 맛이 뛰어나고 신선하여 멸치 중에 으뜸으로 치는 게 죽방멸입니다.
멸치라는 생선은 조금만 스트레스를 받아도 죽고 마는 성질 급한 생선입니다. 하지만 죽방렴에서 잡히는 멸치는 원형의 통발 안에서 오랫동안 살아있게 됩니다. 그렇게 살아있는 멸치를 갓 잡아 식탁 위에 올려놓으니 신선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남해에서 멸치를 요리로 하여 내놓는 곳 대부분이 이렇듯 죽방렴으로 잡은 죽방멸을 쓰고 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멸치는 흔하다 보니 우리네 식탁에서 조연이었지 주연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남해에서는 멸치가 당당히 주연 대접을 받습니다. 멸치를 메인 요리로 내세우는 식당들이 즐비하고 여행객들은 신선한 멸치회를 맛보기 위해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남해를 찾아옵니다.

새콤하게 무쳐내는 멸치회 무침과 생멸치에 시래기 등을 넣고 고추장으로 끓여내는 멸치찌개는 신선한 야채와 함께 조화를 이루며 훌륭한 쌈밥으로 탄생합니다. 멸치회는 살이 토실하게 오르는 봄이 제철입니다. 하지만 남해에는 멸치회 전문식당이 즐비하여 다양한 멸치요리를 언제든 맛 볼 수 있습니다.

비릿할 것 같은 선입견 역시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막걸리 식초를 쓰기도 하지만 죽방렴으로 잡은 싱싱한 멸치를 쓰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멸치로만 한상 가득 차려지는 요리는 남해에나 와야 맛볼 수 있습니다. 성질이 급하고 쉽게 상하는 멸치의 특성상 먼 곳으로까지 이동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남해안 여행을 계획한다면 보리암과 다랭이마을 등 볼거리 풍성한 남해도 섬과 그 섬에 와야 제대로 맛볼 수 있는 멸치요리를 맛보시라 권해드립니다. 미조항 부근의 식당들에서는 대부분 멸치회와 쌈밥을 주 메뉴로 내놓습니다. 어느 집을 들러도 메뉴가 비슷하니 고민할 필요 없이 적당한 식당에 들러 남해만의 풍미를 즐겨보세요. 그리고 500여 년을 유지해 오고 있는 죽방렴의 모습도 눈으로 직접 확인해보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묘미일 겁니다. 또한 매년 5월이면 미조면 북항 일원에서는 "보물섬 미조항 멸치&바다축제"가 열립니다. 그 시기에 맞춰 남해를 여행하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참고로 멸치는 청어목과에 속해있는 당당한 생선입니다. 이곳에서 회나 찌게용으로 쓰이는 멸치를 직접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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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조면 북항 일대에는 멸치요리를 내는 식당들이 많다. 북항 초입에 있는 바다향기회센터(055-867-4447)에서도 다양한 활어회뿐만 아니라 멸치회무침, 멸치쌈밥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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