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연천 불탄소 가든
유년 시절을 무주 금강 지류와 섬진강 상류인 진안에서 살았던 나는 민물고기로 요리하는 음식을 지금도 좋아합니다.
첩첩산골인 고향마을 앞에는 금강으로 흘러드는 작은 실개천이 있었는데, 그 실개천에는 중고기(버들치)라는 물고기가 많았습니다. 피라미등 졸깃한 맛의 물고기들에 비해 고깃 살이 흐물흐물해서 한동안 천대받던 물고기이기도 했습니다. 개천 웅덩이에는 뱀장어가 살기도 했는데, 그 뱀장어를 잡겠다고 자전거에 달린 작은 전등용 모터에 전기선을 매달아 몇 시간 동안 페달을 밟은 적도 있었습니다.
장마가 들어 황톳물 내리는 날엔 족대 들고 강물로 뛰어들었고, 여름이면 직접 만든 작살 들고 하루 종일 물질을 해댔었지요. 섬진강변에 살 때는 농번기가 시작되기 전이면 의례히 마을에서는 냇가에 가마솥을 걸어놓고 천렵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동네 형들은 굵은 동아줄에 지푸라기를 엮어 만든 주낙으로 아래와 위에서 몰이를 한 다음 고기가 몰리면 투망을 던져 고기를 잡아 올렸습니다.
잡은 물고기에 된장과 고추장 무 등 그리고 주변에서 흔한 채소들을 넣고 고기가 문드러질 만큼 걸쭉하게 끓여낸 후 온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그날은 저절로 마을 잔치가 벌어지는 날이었지요.
그렇게 봄철이면 냇가에서 끓여 먹던 천렵 국이 민물고기 매운탕이었고, 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함께 끓여먹던 어죽이었습니다.
연천 재인폭포 부근에는 불탄소 가든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재인폭포를 둘러본 후 깊고 맑은 한탄강을 보니 분명 이곳에도 민물고기 요리를 하는 곳이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인폭포를 돌아 나오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내게 불탄소 가든이라는 독특한 상호를 가진 간판이 눈에 띄어 무작정 찾아간 곳입니다.
위치 또한 큰길에서 빗겨 나 외딴곳에 덩그러니 있어 일부러 찾지 않는 한 지나치기 쉬운 집입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보면 직벽 낭떠러지 위에 식당이 있고, 그 아래로는 한탄강이 유유히 흘러갑니다. 그 풍경만으로도 감탄사가 저절로 나옵니다.
한탄강은 다른 강들과는 달리 화산 용암에 의해 침식되어 협곡으로 흐르는 강입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지표면보다 움푹 파인 골짜기 아래로 흐르는 형태의 강입니다. 협곡은 용암에 의해 다양한 주상절리대가 형성되어 있어 경치 또한 이색적입니다. 가든 아래 협곡에는 유속이 느려지며 작은 보처럼 물이 고여 있는데 이곳을 불탄소라 부릅니다.
메기, 참마자, 동자개, 참게, 쏘가리 등 불탄소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요리를 해서 내놓는 집이 불탄소 가든입니다. 그래서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집의 주메뉴는 민물매운탕입니다.
잡어매운탕, 메기매운탕, 빠가사리매운탕, 쏘가리매운탕, 참게매운탕 등 메뉴가 다양합니다. 메뉴가 많다고 부실할 거라는 편견은 갖지 않아도 됩니다. 모두 직접 잡은 물고기로 조리를 하니 어떤 메뉴든 자신이 좋아하는 민물고기를 골라 주문하면 됩니다.
또한 어느 매운탕이든 민물새우와 참게가 기본으로 들어가니 그것만으로도 육수 맛은 보장되고, 장독대에서 햇볕 잘 받은 고추장과 된장으로 간을 하니 국물이 헛돌지 않습니다. 심심한 듯하면서도 칼칼하며 강한 맛이 도는 이유는 고추씨를 갈아 만든 양념 때문입니다. 민물고기에서는 자칫 흙내가 날 수도 있는데 이 양념장으로 인해 흙내를 비롯한 비린내 등 잡내는 거의 없습니다. 거기에 갓 잡은 물고기를 사용하니 고깃 살이 푸석하지 않고 야들야들합니다.
민물매운탕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금까지 다녀본 집 가운데 괴산의 괴강 할머니 매운탕집과 더불어 이 집을 최고라 손꼽습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어린 시절 섬진강 강가에서 끓여먹던 천렵 국 맛을 이 집 매운탕에서 느꼈기 때문입니다.
바위틈에 낚싯바늘을 꽂아 잡던 그 빠가사리(동자게)맛을 이 집 매운탕에서 느꼈기 때문입니다. 또한 되직하면서도 칼칼하고 시원한 맛이 이십 대 시절 강가에서 소주잔 기울이며 안주삼아 끓여먹던 그 맛과 닮아서입니다.
불탄소 가든은 서울에서 자동차로 쉬지 않고 두시간여를 가야 하기 때문에 일부러 가기에는 작심하지 않는 한 무리가 있고, 재인폭포며 한탄강, 전곡 등 연천지역을 지나거나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꼭 들러보시라 권합니다.
제 격인 음식이 있고, 제 철인 음식이 있습니다. 추워지는 엄동의 계절에는 얼큰하고 따끈한 매운탕 한 그릇이면 추위를 녹이고도 남습니다. 매운탕은 추위를 녹이는데 제 격인 음식입니다. 그래서 겨울이 제 철인 음식이기도 합니다.
추위가 맹위를 떨치고 가슴마저 헛해지는 날이면 민물매운탕 한 그릇으로 식은 가슴을 데워보시기를 권합니다.
주상절리대와 유유히 흐르는 한탄강 풍경이 창밖으로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불탄소 가든 같은 곳에서라면 더욱 금상첨화이겠지요? 돌아오는 길, 먼길을 찾은 수고로움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끼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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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소 가든(031-834-2770)은 재인폭포 초입 우측 들판 끝머리에 있다. 민물고기 전문점으로 한탄강 유역에서 매운탕 잘 끓이기로 알려진 집이다. 도로가에 입간판이 있으나 들어가는 길목이 어수선하여 자칫 다른 길로 들어설 수 있으니 유의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