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시 박경리 문학공원
원주라는 도시는 일반인들에게는 군사도시로 더 알려져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원주 주변으로는 1군 사령부를 비롯해서 많은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기 때문이다. 군부대가 많다 보니 치악산, 간현유원지, 구룡사 등 관광지와 유적지 등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지역이기도 하다. 박경리 문학공원은 원주시내 단구동에 있다. 한국 문학의 걸작 [대하소설 토지]를 쓴 작가 박경리 선생의 집필실이 있던 곳으로 선생을 추모하고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공원인데 원주 여행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 가운데 한 곳이다.
선생은 1980년에 원주시 단구동으로 내려와 토지 4부와 5부를 집필하고 2008년 5월, 이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고향이 통영인 선생은 원주에서 보낸 삼십여 년의 삶이 그에 있어 절정의 시기였고, 문학적으로도 완성기였기에 선생에게 원주는 각별한 곳이며 혼이 오롯이 깃든 정신적 고향이기도 하다.
박경리 선생을 이야기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유신시절 황토, 오적 등의 저항시를 써서 사형선고까지 받았던 김지하 시인이다.
시인 김지하는 저항시를 쓰고 투쟁을 하면서 온몸으로 유신독재와 맞서던 1973년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을 하면서 박경리 선생과 인연을 맺게 된다.
그 후 유신독재가 종말 되고 다시 들어선 군부 정권 10여 년을 지나는 동안 김지하는 투쟁적이던 글에서 벗어나 생명사상을 제창하며 예전과는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던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열사 사망으로 대치중이던 시국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을 신문에 올리며 ‘변절’의 논란에 휩쓸리게 되었고, 최근에 까지 그는 우편향적인 모습을 보이며 전형적인 ‘보수 꼴통’이란 소리마저 듣게 되었다.
한 개인의 삶은 오롯이 개인의 판단과 결정에 의해 정해지는 길이니 ‘변절’이란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또한 바라보는 시각에서도 나와 같은 사상이었지만 어느 순간 달라진다고 해서 무조건 변절이라고 하는 것도 무리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관점은 1+1=2라는 수학적 공식이 아닌 한, 나와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그때도 옳았고 지금도 옳다’라고 김지하는 자신의 변절에 대해 이야기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하지 않아야 할 부분이 있다. 변절이든 아니든의 잣대는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보편적 가치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게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사상 또한 초월하여 존중할 때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협상과 타협이 아닌 이해가 필요한 것이다.
김지하는 어느 순간부터 공정하지 못했다. 한쪽으로 기울어진 추는 한도 끝도 없이 기울기만 했다. 자신이 들었던 ‘빨갱이’란 소리를 서슴없이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 씌우는가 하면 ‘나는 옳고 당신은 틀리다’라는 언행과 글을 수시로 내뱉으며 스스로 보수라는 골방에 갇혀버린 노구가 돼버렸다.
놀라운 것은 이런 그가 한때 생명사상을 주창하며 아릿한 글들을 쏟아냈었고 한살림 등 공동체 실천운동을 했었다는 점이다. 그가 대표적 진보 저항시인에서 극우 보수주의자로 변절한 것은 어쩌면 시류에 따라 적당히 타협한 결과려니 생각할 수도 있겠다. 김문수가 그러했고, 이재오가 그랬듯.
하지만 그는 그가 주창하는 생명사상을 통해 포용과 화해,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였었다. 또한 낮과 밤, 육체와 정신, 천당과 지옥 등 이원적 사고는 자연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에 가차 없는 절단, 파괴, 고립, 분열을 낳기 때문에 대립과 단절이 아닌 일원화된 통일을 주창하여 왔었다.
그런 그가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이분법적 사고뿐만 아니라 해괴망측한 궤변을 늘어놓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죽은 자를 욕하고 이념의 틀에 빠져든 채 반대세력을 규정지어 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생명사상을 주창하던 사람이 어떻게 이렇듯 달라질 수 있을까!
김지하는 변절자 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변절자라면 차라리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 있다. 사상이야 무궁무진한 것이어서 어느 때고 달리 보일 수 있다. 마르크스를 신봉했던 이들이 어느 순간 자유주의의 신봉자가 된 것처럼.
하지만 생명사상을 주창하고 화해와 타협을 강조하던 그가 시정잡배 같은 욕지거리뿐만 아니라 괴팍한 행동까지 해대는 걸 보니 이것이야말로 제대로 된 변절이 아니고 무엇이라 달리 표현할 수 있을까.
아니면 속내를 숨기고 한 시대를 가식적으로 살아왔던 것일까?
박경리 문학공원을 걸으며 변절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선생과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에 대해 곱씹듯 생각한다. 빨갱이로 몰려 사형당한 남편 김행도와 외동딸 김영주, 그리고 사위 김지하. 그들의 면면과 행적들에서 선생은 누구로부터도 위안받았던 삶은 아닌듯하다.
특히 변절자라 불리는 그의 사위 김지하는 어떠한가! 자신은 변절한 적 없다 하는데, 스스로가 객관적이지 못하고 편향적인 정치성향뿐만 아니라 자신이 주창했던 사상까지도 손바닥 뒤집듯 뒤집는 그를 뭐라 변명할 것인가! 분별력 잃은 노부의 행로라 치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그 어떤 무리들로부터 입은 내상으로 인한 반어법적 행위인가!
한국문학사의 최고봉 대하소설 토지 이면에는 이렇듯 아직도 풀기 어려운 것들이 얽히고 설켜있다. 박경리 선생은 이러한 온갖 역경과 혼란 속에서도 굿굿이 작품을 완성해냈고, 그래서 그의 작품과 삶이 더 대단하며 각별하게 느껴지는지 모른다.
고양이 한 마리와 바위에 걸터앉아 물끄러미 빈 마당을 바라보고 있는 선생의 동상이 왠지 쓸쓸해 보인다.
모진 세월 가고 /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이승의 세월이 그렇게 모질었던가! 선생은 돌아갈 날을 눈앞에 두고 편안하다는 말을 두 번이나 거푸 뱉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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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리 문학공원(http://www.tojipark.com/main.php)은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있다. 한국 문학의 최고봉인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머물며 집필 활동을 했던 옛집을 그의 소설 '토지'를 주제로 꾸민 공원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15년을 머물며 대하소설 '토지'를 완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