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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하 Dec 27. 2017

제대로 매운맛은 맛있는 맛이다

북촌 경춘자의 라면 땡기는 날

우연히 맛보게 된 짬뽕 라면

직업상 밖으로 돌아다니는 일이 많다 보니 끼니때가 되면 보통은 뭘 먹을지, 어느 집에서 먹을지를 사전에 정해둡니다. 하지만 일 봐야 할 곳이 여러 곳 일 때는  정하지 않고 움직이다가 시간 눈치를 봐서 흔히 그러듯 적당한 곳에 들어가 한 끼 때우고 맙니다.


약속한 시간이 남아 이른 아침 북촌 골목을 어슬렁 거리다 춥고 허기진 배를 채우려 들어간 라면집, 알고 보니 오래전부터 라면 잘 끓이는 집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었나 봅니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벽면에 붙어 있는 낡은 신문 기사 스크랩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주인아주머니께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뭐냐 물었더니 짬뽕 라면이라며 많이 맵다고 합니다. 나름 매운맛을 즐기는 나로서는 당연 짬뽕 라면을 주문하니 아주머니 한번 더 묻더군요. “덜 맵게 해드릴까요?”. “아뇨. 그냥 매운맛으로 주세요.”

잠시 후 뚝배기에 담긴 시뻘건 라면이 나왔습니다. 눈으로 보기에도 상당히 매워 보이는 포스, 내용물을 보니 각종 해물과 야채가 듬뿍 들어있습니다. 국물은 예상대로 얼큰한 첫맛에 이어 칼칼한 매운맛이 따라옵니다. 하지만 다행스레 맵기만 한 매운맛이 아닌 맛있게 매운맛입니다. 젓가락질 몇 번에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힙니다. 타들어 갈듯이 매콤한 국물까지 마셔대니 아주머니 한마디 더합니다.

“매운 거 잘 드시네요?”
매운 것을 잘 먹는다기 보다는 맛있게 매운 것을 잘 먹는다는 표현이 옳을 겁니다. 맛있게 매우며 사람 몸에 해롭지 않는 음식, 그런 음식은 매워도 자꾸 당기게 됩니다. 물론 속 쓰림도 덜하겠지요?




사람을 탈 나게 하는 매운맛은 음식이 아니다

일전에 매운맛으로 유명하다는 신길동 어느 집의 짬뽕을 호기롭게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그 짬뽕을 먹는 순간 드는 첫 생각이 ‘이것은 음식이 아니다’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국물은 먹지 않고 면만 먹었는데도 30여분이 채 안돼서 몸에 오한과 함께 속이 끊어질듯한 통증으로 급기야 구토까지 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곳 짬뽕을 먹고 탈이난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런 집은 맛보다는 맵다는 걸로 관심을 끌어 장사하는 경우인데, 거기에 매스컴까지 동원되어 맛집처럼 포장해버렸으니 방송만 보고 호기롭게 찾았다가 탈이 나는 사람이 아직도 많은 것입니다.

분명한 사실은 사람을 탈 나게 하는 음식은 음식이 아니며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맵게만 만드는 음식 또한 음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맛있다고 하지만 먹은 후에 몸에 탈이 난다면 그런 음식은 절대 맛있는 음식이 아닌 해로운 음식입니다.


제대로 매운맛은 맛있는 맛이다. 북촌 짬뽕 라면처럼

맛있게 매운맛은 그 맛을 내기 위해 양념을 숙성시키거나 궁합이 맞는 다양한 재료를 혼합하여 최적의 맛을 내게 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음식은 먹어도 탈이 나지 않고 매워하면서도  중독된 것처럼 다시 찾게 되는 거지요. 벽면에 붙어있는 잡지 기사를 보니 이 집에서는 각종 야채를 12시간 끓여낸 양념장 육수를 기본 베이스로 쓴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칼칼하고 매우면서도 맛있습니다.


오래전 단골집이었던 안양 중앙시장의 닭발 집도 맵기로는 둘째가라면 서운해할 정도인데 묘하게 끌리는 맛이 있어 한번 다녀간 사람들은 반드시 다시 찾게 되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 집의 비결 역시 양념소스에 있었는데, 청양초와 태양초로 만든 양념을 일정기간 숙성시킨 후 사용한다고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매운맛은 스트레스를 풀어주는데 일조를 한다고 합니다. 특히 경제가 어려울수록 매운맛을 찾는 사람이 늘어난다고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그마만큼 스트레스가 더 쌓이기 마련인데, 스트레스를 풀기에는 매운맛이 제격이기 때문입니다. 우연찮게 들른 북촌에서 만난 라땡 집, 맵고 칼칼한 라면 한 그릇으로 온몸에 남아있던 찬기운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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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자의 라면 땡기는 날(줄여서 라땡 집이라고 한다/02.733.3330)은 정독도서관 부근 북촌 상가 골목에 있다. 겉으로는 분식집 마냥 작아 보이지만 골목으로 돌아서면 안채가 나오고 안채 거실이며 방까지 손님맞이로 사용한다. 치즈라면과 해장라면이 인기 메뉴, 짬뽕 라면은 맵기가 보통이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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