넋두리

by 황하

1.

무엇 때문이라고 굳이 원인을 찾고 싶지도 않았다.

불쑥 치밀어 오르는 설움, 과정이야 어찌 되었건 결과의 귀결(歸結)은 내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다.


2.

왜? 시작을 "내"가 했으니 그럴 수밖에. 29층, 지천명(知天命)이 가깝도록 살면서 처음으로 내가 머무를 높은 곳에서 발아래를 본다.

양 갈래로 안양 천 벚꽃이 절정이다. 사람들은 돌다리 위에서 짝짓기에 열중인 잉어 떼에 눈길을 떼지 못한 채 발걸음을 멈추고 긴 행렬을 이루고 있다.


3.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밤길을 나섰다.

뒤틀려 있던 심사, 벚꽃나무 아래서 꽃나무를 흔들어댄다.

나무는 꿈쩍도 않는다.

꽃잎도 꿈쩍 않는다.

아직 꽃잎 질 때가 아닌게다.


CYMERA_20150421_092339.jpg


4.

피로를 푼다는 핑계 삼아 술을 마셨다.

언제부턴가 술자리에서 든 어디에서 든 해명(解明)하는 게 습관화되어 버렸다. 정치인도 아닌데.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노래 가사 한 구절처럼 내가 곰이었나 보다.


5.

모든 것의 귀결(歸結)은 돌고 돌아 내게로 온다.

선재동자 소 찾아 떠났다 가다 시 돌아오는 십우도(十牛圖)처럼, 봄 찾아 먼 길나서 헤 메이다 돌아와 보니 마당에 봄이 와있더라는 이야기처럼.


6.

그럴 수밖에 없다. 출발이 나로부터 이니 귀결(歸結)도 나 일수 밖에.

그 과정에서 부디 끼고 아웅 대고 하던 인연들 탓할 필요 없다. 그 역시 나로 인해 잠시 스쳐가며 발생한 것들에 대한 직설적 태도일 뿐. 그래서 짧은 인연에도 나쁘다는 편견 가질 필요 없다.


7.

부러운 친구가 떠올랐다. 한 소식하듯 자유자재로 사는 친구,

그도 나처럼 토해내지 못하는 생채기 서너 개쯤 안고 살겠지만 겉으로 보기에 내게는 그 삶 자체가 로망이다. 부러운 녀석.


8.

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좁쌀만 한 재력으로 갑질 해 대려는……

하루 종일 복수를 생각했다. 지금도 생각한다. 하지만 딱히 떠오르는 방법이 없다. 노는 것도 놀아본 놈이 잘 논다고 복수란 걸 해본 적 없으니 그럴 수밖에. 복수에도 무능한 1인(人)이 나다.


9.

어찌어찌하여 취기를 견뎌내고 귀가를 했다. 정확한 표현은 "어찌 왔는지 모른다" 다.

소파 한 귀퉁이에 매달려 널브러져 잠든 나를 보았다. 취기가 온전히 남아 있는데 눈뜨니 6시이다. 유체 이탈하여 널브러진 내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가관이다.


10.

선재동자는 그리 돌아 마음 법을 깨달았는데, 나그네는 고생 끝에 봄을 찾았는데 나는 이래저래 아무것도 깨 닳지도, 찾지도 못했다. 그러니 이 글을 쓰는 동안 핑계 대듯 "그럴 수밖에"라는 표현을 습관처럼 “쓸 수밖에”


11.

홍천의 야산에서 강제로 꺾어온 왕버들이 꽃을 활짝 피웠다.

한 달여 동안 내게 즐거움을 주던 일곱 송이 금수산 난 꽃과 두 송이 선운산 춘란은 이제 꽃을 모두 거둬냈다. 다시 와야 할 내년의 겨울을 이제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왕버들의 봄인 게다.


IMG_4166.JPG


12.

두어 평 마음 밭에서 근심 없이 자적할 날이 언제쯤일까? 내게 꽃그늘 아래서 희희낙락 대며 노닥거릴 봄날은 언제쯤일까? 아님 이미 수만 평의 마음 밭이 내 것 되어 있는데 그것을 쓸 수 있는"용"이 부족한 걸까?

봄은 이미 와있는데 "욕심"이 과해서 못 보는 걸까?

이래저래 귀결은 "나 때문"이고 그래서 이 질긴 화두 역시 풀어낼 사람 나 외엔 없다. 단 한 사람도. 그래서 사는 게 설웁고 외롭다.

by 黃河

매거진의 이전글멸치 도시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