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진안군 주천면
세속에서의 찌든 날들이 임계점(臨界點)에 이르면 나는 도피(逃避)를 꿈꾼다. 아는 이 한 명 없는 먼 이국땅에서 낯선 이들과 새로운 삶을 꿈꾸는가 하면 안데스 계곡을 걷고 마추픽추를 오르거나 맑은 날 안나푸르나 어디쯤의 바위 턱에 걸터앉아 쏟아지는 별빛을 헤아릴 수 있기를 꿈꾸기도 한다.
어느 땐 이도 저도 싫어져 빨가벗고 있어도 '나' 란 존재가 전혀 드러나지 않는 깊은 산중으로 잠입(潛入)을 꿈꾸기도 하는데 이 꿈이 현재로서는 실현하기에 가장 근접한 꿈이다.
운일암 반일암(雲日岩半日岩)은 오지 중의 오지이다. 혹자들은 전라도의 강원도라 이야기할 만큼 계곡이 깊고 햇볕이 반나절밖에 들지 않는다 하여 반일암(半日岩)이라 불릴 만큼 산이 높다.
산중으로 잠입을 꿈꾼다면 적어도 운일암 반일암 계곡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번 들어오면 헤아릴 수 없이 굽이친 산길을 다시 내려가기 막막하여 주저앉아 좋을 것이고 사방의 풍경이 선계(仙界)에나 있을법한 무릉(武陵)의 경치이니 그 풍경에 홀려 세속 잊기 그만이다.
소꿉놀이하듯 운장산 계곡 계곡 오르락거리다 보면 세월 몇 해 훌쩍 지날 것이고, 그것도 지겨우면 무릉마을 토박이 몇 사람 벗으로 사귀어서 막걸리 한잔 호사롭게 나눠마시면 될 것이다.
이렇듯 깊고 아름답고 청정한 곳이 또 어디 있을까!
운일암 반일암 계곡을 내려오던 물은 용담댐에서 다른 물들 과 합수되어 거대한 호수를 이룬다. 그리고 호수의 또 다른 상류 끝자락에는 마이산이 우뚝 서있다.
되돌아와야 하는 운일암 반일암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유랑하듯 용담호와 마이산을 지나는데, 옛 기억들이 보푸라기처럼 일어나 깊은 회상에 젖게 한다.
용담호 수몰로 인해 모교를 잃어버린 친구들은 어디쯤서 다들 잘 살고 있는지, 벚꽃잎 날리던 어느 봄날 마이산 아래서 기타 치며 고고 춤추던 친구들도 안녕들 하신지 불현듯 그들의 안부가 생각난다.
주마등 같은 날들이 어느덧 수십 년 흘렀고, 그 세월 따라 내가 늙어간 만큼 그네들도 변해있겠지. 유년의 한 시절을 보낸 곳에서 유년의 '나'와 어느덧 중년이 돼버린 오늘의 '나'가 수십 년 세월의 간극을 두고 내 안에서 공존하고 있는 모습을 본다. 그리고 그곳으로의 회귀(回歸)를 은밀히 꿈꾸고 있다. 어쩌면 꿈은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뜸하던 발걸음이 잦아진 걸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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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일암반일암은 전북 진안군 주천면에 있다. 운장산과 명도봉 사이로 이어지는 협곡으로서 그 길이가 5km에 이른다. 다양하고 웅장한 기암괴석들과 굽이쳐 내리는 물길, 그리고 앙갈래로 펼쳐진 빼어난 산세가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다. 운일암반일암과 더불어 담수호인 용담호와 마이산까지 연계해서 둘러보면 이미 진안 여행의 절반은 섭렵한 것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