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 임실에서 순창까지

by 황하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중략-
김용택의 시 섬진강 중에서




진안 팔공산 데미샘에서 시작한 물은 백운면을 지나고 마령 평지 뜰에서 남쪽으로 떨어지는 마이산 물까지 합세하며 강폭을 넓혀간다. 강은 월운리에 이르러 부귀에서 내려오는 물과 만나 본격적으로 강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성수면으로 접어든 강은 산수동, 좌포, 증자동, 양화, 산막, 반룡, 포동, 막동, 그리고 관촌 등 강만큼이나 아름다운 이름의 마을들과 더불어 냉천, 용문 바위, 사선대 등의 절경을 만들어 내기 시작한다.

임실 옥정호에 이르러 잠시 멈칫한 강물은 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시 섬진강에서도 표현되었듯이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을 끌어 모으며 사백여 리를 때로는 거침없이, 때로는 유유하게 흘러내린다. 강은 여전히 옥정, 덕치, 진매, 천담, 구담 등 이름이 아름다운 마을을 지나고, 태극 모양으로 굽이친 산굽이를 따라 흘러내리며 장군목 등 마을 이름들 만큼이나 빼어난 풍경을 연출해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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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들은 한결같이 외지고 험하다. 그래서 문명의 혜택 또한 더디다. 이러함이 역설적으로 오염되지 않은 청정을 여태껏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퍼올려도 가물지 않는 저 강물처럼 아무리 벗어나려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던 그 가난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을까.
그래서 강은 한이 되고 강은 그 한을 보듬고 속울음 참아내며 순창 뜰을 지나 지리산 산허리 춤으로 숨어들더니 거친 숨소리 한번 없이 남해로 흘러 바다가 되고 만다.

어린 시절의 나도 그랬다. 섬진강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대두산에 올라 빗장처럼 겹겹이 쌓인 노령의 준령들을 보며 가슴 절절히 도 탈출을 꿈꿨었더랬다. 헛일이었던 산 오름을 수도 없이 하고 나서야 핑계거리 하나 만들어 어머니 가슴에 비수 꽂고서 도망치듯 떠나온 게 삼십여 년 전 일이다.
세월 그리 흘러 강산도 많이 바뀌었겠지만 사람만큼 변하기나 했을까. 풍파의 흔적은 그 무엇으로도 지워내지 못한다고 살아온 세월의 흔적은 이마에, 동공에, 눈 밑에 그리고 어머니 가슴에 꽂았던 비수를 내 가슴에 꽂은 채 다시 강을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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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 그대로이다. 수십 년 세월 하루도 거르지 않고 눈인사하던 건넛마을 노창(老蒼)이 상여 타고 떠나도, 그래도 자식이라고 가뭄에 콩 나듯 어느 집 자식이 다녀가도, 바위틈 숨어 사는 귀하디 귀한 수달만큼이나 귀하디 귀한 아이들 몇이 제 몸에 뛰어들어 퐁당대며 돌 던지며 실컷 괴롭혀도 무심한 듯 달관한 듯 그렇게 흐르고만 있다.
하기사 나같이 염치없는 인간이 은근슬쩍 찾아들어도 묵묵하니 강은 분명 한 소식한 게 틀림없다. 초근목피로 연명하여도 마음 근심 없으면 그것이 남부러울 것 없는 삶이라는 것을 어찌 그때는 몰랐었는지 부화 치밀어 오르듯 오르는 후회는 멈출 줄을 모른다.

강은 그대로이고 나는 한 마리 연어가 되어 강으로의 회귀를 늘 꿈꾸고 있다. 다행히 연이 닿아 꿈이 현실로 이뤄지는 날이 오면 어디 몇 놈 달려들어 퍼간다고 절대 마르지 않을 섬진강 어느 강가에서 남아있는 사연 목놓아 토해내고 그 강물에 입가심하며 묵은 챗기 꼭 씻겨볼 일이다. by 黃 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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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 백리 섬진강 가운데 상류에 속하는 진안, 임실 구간은 아직도 외지인들에게 덜 알려진 곳이다. 산이 험하고 물줄기 또한 똬리 틀듯 산세따라 흐르고 있기 때문에 접근하기가 용이치 않아서 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국적으로 불기 시작한 둘레길 열풍이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은 강줄기따라 끊어짐 없이 길이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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