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강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는 따끈한 국물 음식이 저절로 생각난다.
잔뜩 움츠리고 종종걸음으로 걷다 보면 온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꽁꽁 얼어붙는 느낌이다. 이럴 때 추위를 빨리 덜어내는 방법은 뭐니 뭐니 해도 따끈한 음식으로 빈 속을 채워 넣는 것. 팔팔 끓여 낸 국물 몇 수저만 들어가도 얼었던 몸이 풀어짐을 금방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국물 요리가 발달한 민족이 또 있을까?
요리 이름 가운데 '국'자와 '탕'자가 들어간 음식은 모두 국물 요리이며 심지어 불고기나 두루치기 찜 또는 찌개 요리에도 자작하게나마 국물이 있다.
본래 ‘국’과 ‘탕’은 같은 말이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국’은 국물이 많은 반면 ‘탕’은 건더기가 많이 들어간다. 또한 ‘국’ 보다는 ‘탕’이 요리시간도 더 걸리고 들어가는 부재료 역시 많이 들어간다.
국물 요리를 좀 더 세분화해보면 그 종류와 방식이 다양함에 새삼 놀라게 된다.
'국'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된장국, 미역국, 북엇국, 소고깃국 등 밥과 함께 오르는 밥상용과 순댓국, 콩나물국, 해장국 등 토렴식으로 밥이 말아져 나오는 국밥 등이 있다. 국밥은 끼니용 이기도 하지만 간단한 술안주 대용으로도 널리 사랑받고 있다. 또한 ‘국’은 재료에 따라 장국, 토장국, 곰국, 그리고 여름에 즐겨먹는 냉국 등으로 분류되며 그 가지 수는 수십여 종에 이를 만큼 많고, 매 끼마다 번갈아 가며 밥상에 오르는 대표 음식이기도 하다.
'탕' 요리는 국 요리보다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간다. '탕'요리로는 해물탕, 갈비탕, 추어탕 등 쓰이는 재료에 따라 그 종류 역시 다양하며 얼큰하게 끓여내냐 아니면 맑게 끓여내느냐에 따라 '매운탕'과 맑은탕(지리)으로 분류한다. 또한 열구자 탕이라 하여 육수를 끓이며 다양한 재료를 취향에 따라 넣어먹는 신선로(샤부샤부식) 역시 그 재료의 종류가 다양하거니와 조리가 화려하다.
이러한 조리법은 지리적 환경에 따라 지역별로 방식이 각기 다르다.
예를 들면 추어탕의 경우 지역별로 된장을 푸는 곳과 고추장을 푸는 곳, 사골을 우려내어 육수로 쓰는 곳이 있는가 하면 미꾸라지를 통째로 쓰거나 삶아낸 후 으깨어 쓰는 곳이 있다. 또한 남원식은 시래기, 부추를, 원주는 감자채와 미나리를, 경상도는 고사리, 토란 대등을 넣고, 서울식은 두부, 양파, 버섯 등을 넣는다.
이는 그 지역에서 많이 나는 특산물이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부재료 등을 활용해서 만들다 보니 그 지역만의 특색 있는 요리법으로 토착화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국물요리를 좋아하는 데는 오래전부터 술을 좋아하는 민족성이 때문이기도 하지만 계절적 요인도 있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사실 우리나라 기후가 사계절이 뚜렷한 곳이라지만 밤 낮의 기온 차가 큰 편이라서 여름을 제외하고는 늘 아침이나 저녁이면 선선하거나 쌀쌀하다. 더욱이 시베리아 한랭 기단에 속한 겨울의 추위는 그 맹위가 대단하다. 날씨가 쌀쌀해지면 가장 먼저 빠르게 반응을 보이는 것이 사람의 ‘몸’이다. 추워지므로 인해 사람의 몸은 자연적으로 움츠려 들고 위축되는데 이때 따뜻한 국물음식은 경직된 몸을 풀어내는데 제격이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면 국물요리가 발달하게 된 때에는 민초(民草)들의 가난한 환경도 한몫했다고 볼 수 있다.
나라님 보다도 더 무서워했던 게 호구(糊口)라 할 만큼 삶이 늘 궁핍했던 민초들은 가족의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부족한 식 재료에 물을 잔뜩 부어 끓인 후 그 끓인 국물로 허기를 채우게 했다. 특히 춘궁기(春窮期)에는 더 심해 보리쌀이든 쌀이든 모든 식 재료를 최대한 불려서 가마솥 가득 물을 부어 끓여 먹이곤 했는데, 그냥 끓이면 죽, 거기에 양념을 하면 국밥이 되었다. 이렇듯 척박한 환경은 불과 2~3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이어져 왔었고, 필자 역시 후루룩 눈 깜짝할 사이 한 그릇 비워내던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러한 환경 속에 국물 요리가 발전한 것은 어쩌면 자연발생적이라 할 만큼 당연한 현상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모처럼 겨울다운 겨울을 맞고 있는 요즘, 따끈한 국물이 저절로 생각난다.
뽀얗게 끓여내는 부산 식 돼지국밥이며, 피순대 잔뜩 들어간 무주 5일 장터의 순대국밥, 서산 둑방 아래 어죽과 영종도의 바지락 칼국수 국물, 그리고 주문진의 곰치국과 재인폭포 근처의 민물매운탕도 떠오른다. 무쇠 솥에 끓여내는 대림동의 추어탕 역시 이 계절에 제격이며 국물이 칼칼한 평택의 꽃게탕도 요즘이 딱이다.
이렇듯 입맛을 당기게 하는 국물요리가 어디 한두 가지 이겠냐 마는 추운 겨울에는 특히나 생각나고 자주 찾게 된다.
춥다고 웅크려 있지만 말고 가까운 지인들과 함께 국밥 집에서든 탕 집에서든 따끈한 국물로 추위도 풀어내고 든든히 속도 채워 낸다면 이 겨울 너끈히 지내고도 남을 것이다. 우리네 선조들이 그래 왔던 것처럼.
*’ 국’과 ‘탕’은 같은 뜻의 같은 말이다. 굳이 구분을 하자면 ‘국’의 높임말이 ‘탕’이다. 흔히 제사상에 올리는 국물음식 앞에 ‘탕’ 자를 붙여 소탕, 어탕, 육탕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by 黃 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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