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봉화군 문수산
산중의 가을은 이미 기울었다. 소슬한 산길에도 떨어진 나뭇잎이 수북하고 잔 바람이라도 불라치면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무는 마른 잎새들을 떨궈내고 있다. 이렇게 또 한 시절이 지나고 있다. 지천명을 목전에 둔 이의 발걸음은 그래서 더 무겁기만 하다.
산길은 좁아졌다 넓어졌다를 반복하면서도 끊이지 않고 실핏줄처럼 이어져 있다. 오르는 된비알은 숨을 턱 밑까지 차 오르게 하지만 가끔 너럭바위를 내어 줌으로써 쉴 틈을 내게 준다.
앞서가는 일행들의 도란 거림이 정겹다. 뒤 따르며 엿듣는 내 발걸음도 즐거움이다. 호젓한 산중에는 이렇듯 나와 일행뿐이다.
불현듯 혼자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몇 해 전 혼자서 걷던 지리 능선에서 처럼 말이다.
아마도 이른 가을 즈음이었을 게다. 성삼재에서 보이던 맑은 별은 노고단에 이르니 어느새 사라지고 먹장구름 몰려들더니 이내 굵은 빗방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 비는 벽소령에 다다를 때까지 이어졌고, 그 비를 맞으며 몇 시간 째 인기척 하나 없는 산길을 홀로 걸어야 했다.
걷는 동안 혼자라서 좋았던 호젓함은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롭다는 마음으로 변했고, 어둠 내려오니 공포감마저 엄습해와 마음은 이미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대고 있었다. 그때 얼마나 인기척이 그리웠던지 겪어보지 못하면 쉬이 상상하 기조차 어렵다. 그 상태는 몇 시간 동안 이어졌고 결국 벽소령 불빛이 눈에 들어오고서야 가라앉았다.
이후로 가급적이면 홀로 산행을 자재하고 누군가를 꼬드기거나 획책(?)해서 함께 다니려 한다. 하지만 타고난 습성 못 버리듯 혼자 떠나는 길이 아직도 태반이다.
문수산 오르는 길은 혼자 왔으면 외려 지리산보다 더 마음이 흔들렸을 것 같다. 지리 능선은 높고 멀어 오르면 뒤돌아갈 수 없이 앞으로 만 가야 한다. 뒤돌아 설 여력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문수산은 오르는 내내 지척으로 마을이 보이고 절이 보인다. 을씨년스러운 마음 들라치면 이내 돌아서 내려가면 된다. 그마 만큼 문수산은 사람 사는 곳과 지척이면서도 찾는 발걸음 드문 산이다. 산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멋지고 아름다운 경관 좋은 산을 찾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문수산은 그저 평범하기만 하다. 기암괴석 하나 없고 드넓게 펼쳐지는 조망을 내어주는 곳도 드물고 오로지 울창한 산림만 빼곡하다.
하지만 그런들 어떠랴. 행선(行禪) 하듯 축서사 돌고 스스로를 관(觀)하며 내면과의 대화를 나누기에는 문수산 산길이면 충분하다. 발목 깊이 묻히는 낙엽을 밟으며 사그락 거림에도 귀 기울 일 수 있으니 그 또한 지루하지 않다. 혼자 아닌 여럿이 왔을 때 두런두런 속닥이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 문수산이다.
산길을 돌아 내려오는 길, 어느덧 앙상해진 나뭇가지 사이로 드는 햇볕이 곱다. 초입부터 사그락 대던 낙엽 밟히는 소리는 내려서는 내내 여전하고 턱밑까지 차오르던 숨도 어느새 가라앉아 고요하다.
비록 산 이름처럼 문수의 지혜는 얻지 못할 지라도 홀로이든 여럿이든 오르고 나면 후회는 들지 않을 곳임이 분명하다. 굳이 가을이 아니라도 사시사철 어느 때 올라도 호젓하고 적막하여 정감 가는 산이기 때문이다. 내려와 축서사 경내를 걸으며 한 호흡 가다듬을 수 있는 여유는 문수산이 주는 덤이다. by 黃 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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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산은 경북 봉화에 있는 산으로 그 높이는 1,208미터에 이른다. 일찍이 봉화의 진산으로 불렸으며 한국의 200대 명산 중 한 곳이기도 하다. 문수산이 품고 있는 축서사는 그 역사가 1,500여 년 에이르고 문수산 주변에서 생산되는 사과는 전국의 으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