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센인의 한이 서린 소록도
#1. 조막만 한 아이들 손에는 돌멩이가 쥐어져 있었고, 아이들은 산 중턱 움막을 향해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겁을 단단히 먹은 아이들은 움막 근처에는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먼발치서 돌을 던지고 달아나고를 반복했다.
#2.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우리 집 문간방에서 잠을 자고 가던 행상 아줌마가 있었다. 아줌마는 항시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있었고 두꺼운 뿔 테 안경을 쓰고 다녔다.
어느 날이었다. 그 아줌마의 뿔 테 안경 너머로 눈썹이 없는 것을 보고 말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방으로 숨어들었고 문을 걸어 잠근 채 아줌마가 방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섰었다. 그 이후로 아줌마를 보지 못했다.
어린 시절에 배웠고 들었던 풍문들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참 어리석었구나 하는 생각에 저절로 쓴웃음이 지어지곤 한다. 오랑캐는 뿔난 도깨비처럼 생겼으며 공산당들은 빨갛게 생겼고 문둥병 환자는 사람 간을 빼먹고 근처만 가도 병을 옮는다 등등, 소문은 사람들 입을 타고 전염병처럼 번져가며 살이 보태지고 부풀어졌을 테지만 소문의 근원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이제는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어느 시절이나 마찬가지지만 권력은 국민들이 무지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옳든 그르든 그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어떠한 행동도 서슴지 않는다.
또한 그 시절 세상을 가르치던, 정보를 전달하던 선생들은 어땠을까! 다는 아니겠지만 오랑캐는 머리에 도깨비처럼 뿔이 나있고 문둥이는 전염된다 라고 가르친 선생들이 분명 있었다. 사실이 아님을 알면서도 권력자가 하라니까, 그리 교육시키라니까 앵무새처럼 거짓 사실을 순진무구한 아이들에게 태연스레 가르친 선생들이 분명 있었다.
이들로부터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가르쳐 주는 대로 따라 학습을 했으니 얼마나 무지몽매했겠으며 얼마나 왜곡된 세상을 사실이라 여기며 지내야 했을까! 내가 그러했듯이.
소록도 자혜병원은 일제시대 한센병 환자를 격리하기 위해 1916년에 세워졌다. 이후 소록도는 외부인들에게는 접근해서는 안될 섬으로, 한센인들에게는 통한의 섬으로 되고 말았다.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격리된 한센인들은 이곳에서 엄청난 픽박과 심지어 생체실험까지 당하며 엄청난 고초를 겪어야 했다. 전염된다는 오인으로 인해 일제시대뿐만 아니라 광복 후 우리 정부에 의해서도 격리정책은 그대로 이어졌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과 강제로 격리시키고 면회 시에도 거리를 두고 만나게 하는 등 인권침해의 대표적 사각지대가 소록도였던 것이다.
그 이후 나병은 신체접촉 만으로는 전염된 사례가 없다고 발표되었고 발병 시에도 초기 치료 시 완치되기 때문에 격리가 필요 없게 되었으나 아직도 대다수 사람들로부터 심정적 냉대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소록도를 걷는다. 핍박으로 절규하던 목소리가 구석구석에서 들리는 듯하다. 그리고 가슴 한편에서 무지했던 어린 날의 내 모습과 철없는 행동으로 상처받았을 그분들이 떠오른다. 잘못 교육을 받았든, 헛소문을 듣고 오인을 했든 행동을 한 가해자는 '나' 이기 때문에 절대 그때, 그날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안다. 그래서 참 많이 미안하고 미안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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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록도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있는 섬으로서, 섬의 모양이 어린 사슴과 비슷하다 하여 소록도라 불리고 있다.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를 위한 국립소록도병원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며 송림과 백사장이 아름답다. 또한 일제 시대 격리시키기 위해 강제로 수용되었던 건물을 비롯한 당시의 잔재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아픈 역사를 접할 수 있다. 현재에도 한센병 환자들이 격리되어 이곳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며 그로 인해 일몰 후가 되면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