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 3월의 마른 모래>
<가을방학>이라는, 더 이상 활동하지 않는 인디밴드가 있다.
많이 알려진 가수는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이들의 노래를 좋아해 왔다.
가사는 복잡하지 않은데도 들을 때마다 마음에 다른 모양으로 남곤 한다.
누군가의 솔직한 감정이 아주 담백하게 흘러가는 느낌.
작사, 작곡을 담당하는 멤버의 사회적 물의(범죄)를 알게 되고, 노래를 좋아해야 하나 고민은 된다만,
노래를 들을 때의 내 감정은 온전히 내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최근 <3월의 마른 모래>를 다시 들었을 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 스쳐갔다.
지나간 누군가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솔직하지만, 마음의 가장 깊은 곳은 좀처럼 쉽게 꺼내지 않는 사람이라고.
그 말이 늘 마음 한편에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같은 노래에서도 예전과는 다른 감정이 일렁이는 걸 더 또렷하게 느끼곤 한다.
그래서 그 순간에 스친 감정을, 내 방식대로 조용히 풀어 적어본다.
아래의 글은 그 노래가 불러낸 이미지와 감정을
나의 방식으로 정리한 짧은 감상문이다.
<코트 주머니 속 모래>
너에게서 빌려온 더플코트를 꺼내 입고 거리를 걸었다.
3월은 오래전에 지나갔고,
계절과 맞지 않는 옷차림이라는 건 모두가 알고 있지만, 상관없다.
추운 게 싫고, 나는 늘 내 감정이 이끄는 방향으로 몸을 맡기는 사람이니까.
코트를 입고 걷다 보니,
문득 3월의 바람 속에 코트를 여미던 너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직 겪어 보지 못한 너의 모습이 떠오른다는 게, 아주 작게, 그러나 분명하게 나를 웃게 했다.
사랑하는 사람의 온기가 오래된 옷처럼 다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너를 떠올리던 그 따뜻한 틈 사이로
차갑게 스며드는 생각이 있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지난날,
너의 곁에 누군가가 함께 있었을까.
너의 웃음, 너의 고민,
너의 하루를 다른 누군가가 들어주었을까.
그 미세한 질투와 외로움은
아무리 두꺼운 코트를 여며도 막을 수가 없었다.
문득, 강아지가 떠올랐다.
잠에서 막 깨어난 눈빛으로
세상의 처음을 바라보는 모습,
주인만을 믿고 다가오는 발걸음,
아무 계산도, 아무 악의도 없는 그 순정.
사랑하는 사람의 눈동자도 가끔은 그런 얼굴을 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너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고,
너 역시 내게 그런 순한 존재였으면 한다.
그래서 바란다.
내년 3월,
아직 오지 않은 그 계절의 문턱에 너와 함께 서 있기를.
네 주머니 속에 남아 있는 미련의 모래들을
바다 바람 앞에서 조용히 털어줄 수 있기를.
그때의 우리는
지금보다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조금 더 따뜻한 계절을
함께 맞이하고 있기를.
3월의 마른 모래는,
아마도 사랑하는 사람의 기억에 남은 미련과 그리움이겠지.
나의 모래를 털어줄 수 있는 사람이 오기를,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모래를
조용히 털어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