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회복, 그리고 나를 이해해 주는 사람을 찾아서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2008)>

by 준헌

몇 달 전, 이별했다.
담담하게 끝냈지만, 감정은 생각보다, 아니 그보다 더 오래 머물렀다.
아직도 어떤 순간에는 그 여파가 밀려온다.


이별을 견디는 중,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한 영화를 보게 되었다.

'Forgetting Sarah Marshall' 한국 제목은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
가벼운 번역 같았지만, 영화를 보고 나니 꽤 정확한 말이었다.


영화는 무너짐과 외면, 지지받지 못한 감정, 그리고 회복을, 가볍지만 진심을 담아 그린다.

보는 내내, 주인공에게서 나를 보았다.


1. 피터는 무기력했다. 그리고 나도 그랬다.

이별 후 피터는 완전히 무너진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고, 울컥하면 아무 데서나 울어버리고,
괜히 의미 없는 만남에 기대 보기도 한다.

그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나 또한 한동안 제대로 먹지도 못했고,

감정이 들키는 게 두려워 지인들을 피했다.
몇 년 전 사라진 줄 알았던 불면증도 다시 찾아왔다.
몸과 마음이 동시에 꺼지는 듯한 느낌.
‘사랑은 사라졌고, 나는 남겨졌다’는 기분.


2. 사랑은 지지 없이는 오래가지 못한다

영화에서 피터와 사라는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 속은 비어 있었다.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감정의 무게를 들여다보려 하지 않는 관계.

피터는 오래전부터 외로웠고, 사라는 지쳐 있었다.
이별은 갑작스러운 사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오래된 지지의 부재가 쌓여 도달한 결론이었다.


나도 영화를 보며 뒤늦게 알았다.
관계의 균열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게 아니었다는 걸.

이해받지 못하는 가치관, 존중받지 못하는 감정,
애쓰는 사람이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관계.

사랑은 조용히 마르고 있었다.


3. 누군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준다는 것

피터는 하와이에서 레이첼을 만나며 조금씩 회복한다.
그녀는 따지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들어주고 웃어주는 사람이다.

이해는 기술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이라는 걸 보여준다.
피터 역시, 그 따뜻함 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생각했다.

‘나도 언젠가, 설명하지 않아도 통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그 가능성만으로 숨이 조금 쉬어졌다.


4. 회복은 거창하지 않다

— 그냥 다시 살아보겠다는 결심

하와이에서의 일상은 피터에게 회복의 과정이었다.
울기도 하고, 술도 마시고,
그러다 서핑을 배우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조금씩 다시 피터의 얼굴을 되찾아간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다시 음악을 만든다.

자신다운, 진짜 하고 싶었던 음악.
그 선택에는 주변 사람들의 인정과 지지가 있었다.

하지만 회복의 시작은 결국 피터 자신에게 있었다.

“다시 살아보겠다”는 그 작은 결심.

영화 전반에서 위로를 받았다.

회복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삶을 아주 조금씩 움직여보는 일이라는 걸.


나 또한 회복을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감정 기록을 하고, 운동을 하고, 이직을 준비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려는 것도, 잊기 위한 것도 아니다.
그냥, 내가 다시 살아보고 싶어서.

회복은 그렇게 시작된다.

‘잘 살아보자’는 소박하지만 단단한 마음에서.


5. 이제는 나를 알아보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

이별을 통해 알게 된 것이 있다.
내가 바라는 관계는 조건이나 타이밍보다
서로를 이해하려는 의지가 있는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내 감정의 결을 알아보는 사람.
내 말투와 생각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사람.

나 또한 그런 사람 곁에서라면
기꺼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냐고? 이렇게 변하더라]

사랑은 변했다.
그 사람도, 나도.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하지만 그 끝은 ‘나의 끝’이 아니다.

오히려 그 순간부터,
나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아주 느린 속도로
내 감정은 다시 살아나고 있다.

어쩌면 언젠가
이 경험이 또 다른 사랑을 더 깊게 만들지 모른다.

지금의 나는, 괜찮다.
그리고 잘 가고 있다.


[이해는 기적이고, 그 기적이 나를 살게 한다]

피터가 무기력했던 이유는
그의 열정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정이 이해받지 못하면, 사람은 쉽게 말라간다.


전 연인 사라 역시 잘못만 한 건 아니다.
그녀에게도 외로움이 있었다.
열정이 없어 보이는 남자친구,

자신은 성공하고 있으나, 상대는 늘어져 있는 모습.

그녀 나름대로 피터를 일으키고자 노력했으나,

혼자만 애쓰는 느낌이 들었을 수도 있다.


한 관계는 둘의 이야기이고,
누구 하나만의 책임으로 설명할 수 없다.


피터가 진짜로 치유된 순간은
사라를 용서한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바람난 전 여친의 피해자가 아닌,
자기 인생의 주인공이 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레이첼을 만나
존중받는 경험이 한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보여준다.

이해는 사람을 회복시키고, 다시 살아가게 만든다.


나도 그걸 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직장인이지만
서서히 무기력해지고 있었던 이유.
내 세계를 이해해 줄 사람이 곁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 연인에게 악감정은 없다.
나도 상처를 줬고, 그녀도 지쳐 있었다.
그래서 지금 남은 건 원망이 아니라 후회와 그리움이다.


하지만 나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필요하겠지.

앞으로의 사랑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고 지지해 주는 사람과 하고 싶다.

연애를 해도, 결국 나는 나로 살아야 하니까.
그리고 누군가 그 나를 이해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겨낼 수 있다.


이해받는다는 건 기적이고,

그 기적은 사람을 살게 한다.


이 영화는 유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
흔한 미국식 로맨틱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어떤 감정으로 보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영화가 되기도 한다.

한국 개봉은 없었지만,
이별 후 보기 좋은 영화다.
슬픔을 자극하지 않고, 조심스레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영화.


조금은 무너진 마음을 붙잡고 있다면,
가볍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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