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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준혁 May 13. 2021

외로움의 출처는 어디였을까.

낯선 일본라멘에서 찾은.

기억 속 일본라멘을 처음 먹은건 친척동생과 오사카 여행을 갔을 때 였다. 첫 일본여행 이었던지라 꽤나 들떠있었던 기억이다. 일본에서 꼭 먹고 싶었던 스시와 편의점 음식들은 이미 다 섭렵했기에, 딱히 다른 음식을 먹어봐야겠단 생각은 없었다.

때마침 꽤나 추운 날씨 였었고, 때마침 오사카 도톤보리 한 구석 다리 밑의 작은 라멘집이 눈에 띄었다. 때마침 배도 고팠고. 때마침의 마법에 홀려 그 작은 라멘집으로 들어섰다. 정말 작았다. 일본의 힐링드라마로 유명한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아마 이런 느낌이겠구나 했다.

세 사람이 겨우 앉을 그 작은 라멘집에서 먹었던 첫 일본라멘은, 따스했다.

날씨탓도 여행의 들뜬 기분탓도, 그 작은 라멘집이 실제로 따뜻했을 수도 있겠지만, 맛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보다는 그냥 따스했다 라고 표현하는게 맞겠다. 관광지를 찾아다니고, 시간에 쫓겨 재밌는 것들, 맛있는 것들 따위를 쫓는것에 지쳐있던 걸지도 모른다. 긴 타지생활을 마치고 고향집에서 집밥을 먹는 따스함이랄까. 그런 느낌 이었다. 내게 일본라멘은 기대했던 스시와 편의점 음식들보다 훨씬 깊게 남았다. 따스하게.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간헐적으로 일본라멘집을 찾아다녔지만, 왠지, 일본에서처럼 따스하진 않았다.

그러다 일본라멘에 어떠한 의미를 부여하게 된 것은 베트남에서 일을 할 때였다.

서비스직의 일을 하고 있던지라, 대게 그렇듯 다양한 손님들의 다양한 컴플레인들이 다양한 스트레스로 쌓여갔다. 그리고 작은 한인사회에서, 모두와 친해지고 싶어 스스로 채찍질해 퇴근후에도 사람을 만나는 일에 집중했다.

그렇게 하루하루 타인들에 집중하다 보니, 내 자신이 뒷전이 되었고 나는 망가져갔다. 감정도 몸도.

그렇게 나를 망가뜨려가며 살다 보니, 손님들도 지인들도 나를 찾아줬다. 하루도 약속이 없을때가 없었다. 내 캘린더는 빈틈없이 빽빽했다.

많은 이들이 찾아주는 사람이 되어, 내 주변엔 항상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나는 외로웠다.

힘든것도 망가지는것도 출처를 알 수 있었지만, 그래서 언제든 끊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지만, 이 외로움만큼은 출처를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을 더 많이 만나고 날 더 망가뜨려 봤지만, 내 주변에 사람들은 더 많아져갔지만, 출처 모를 외로움은 가시질 않았다.



그러던 중 일정이 취소되어 혼자 저녁을 먹을 때 였다.

때마침 꽤나 쌀쌀한 날씨 였었고, 때마침 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고, 때마침 일본라멘이 생각났다.

일본라멘집이 많은 일본인거리로 가 한 작은 라멘집으로 들어간다. TV에서는 낯선 일본방송이 나오고 있었고, BEST 메뉴라 주문한 낯선 일본라멘에선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올랐다.

하얀 국물을 한숟갈 뜨고는 너무 뜨거워 잠시 식혀먹기로 한다. 면은 조금 불은게 맛있지. 차슈를 먼저 맛봐볼까. 음 괜찮은걸. 면이 적당히 불었어. 국물도 적당히 식었군. 음 이게 일본라멘이지!

적당히 식혀 따스해진 라멘은, 그 옛날 오사카에서의 따스함보다 더 했다.

순간 울컥 눈물이 날 뻔 했다. 오롯이 내 속도대로, 내 입맛대로, 내게 맞는 끼니를 먹은게 얼마만이던가. 앞에 놓인 작은 라멘그릇이 천천히 먹거라, 괜찮다, 모락모락 말을 걸어와 주는 듯 했다. 낯선 일본방송을 보며 낯선 일본라멘을 먹는 그 일련의 과정에서, 낯설었던 내가 익숙해져 다가왔다. 스스로 멀리해서 낯설어져버린 내가, 이 낯선 일본라멘과 함께 다가와줬다.


나를 괴롭혔던 외로움의 출처는 나를 잃음 이었던가.


그 순간 온통 하얀 세상엔 나와 일본라멘 뿐이었지만, 외롭지 않았다. 내가 나를 찾은 순간, 나는 외롭지 않았다.



이후로는 바쁜 일상 속에서도 나만을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꼭 가졌다. 걷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글도 썼다.

혼자서 나를 돌아보고 보다듬어 주는 시간은 생각보다 중요했다. 아니 내 삶을 사는것에 있어 이보다 중요한 일은 없다.

내 삶의 주체는 나여야만 한다. 내가 나를 잃어서는 안된다. 내게 내가 없어 공허했고, 심히 외로웠다. 무엇을 하던 의미도 의욕도 없었다. 나를 위한게 아니었으니까.

아직도 나를 사랑하는것에 익숙치 않아 채찍질하고 몰아붙힐때가 많지만, 이제는 나름 훌륭한 대처를 하고 있다.

걷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글을 쓰거나, 일본라멘을 먹기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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