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가정 사이에서 아빠로 살아가기
학생 때는 그렇게 돈을 벌고 싶더니, 돈을 벌면서 부터는 그렇게도 일하는 것이 싫어졌었다. 그래도 돈을 벌기는 해야하겠기에 그나마 더 마음 가는 일들을 열심히 찾아다녔고, 그 결과 몇 번의 이직과 몇 번의 직무 변경을 겪게 되었다.
결혼하기 전에는, 아니 결혼하고 나서도 아빠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의 환경이 통제 가능했기에 원하면 얼마든지 자기계발을 위한 활동에 시간을 투자할 수 있었다. 일하는 데에 도움이 될만 한 새로운 툴을 학습하거나, 관련 컨퍼런스에 참석해서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시간도 충분했다. 이를테면 이런류의…
하지만 이제는 그렇게 열심히 밖으로 나돌아다니기에 짊어진 것들이 많아 마음 먹기가 쉽지 않다. 무엇이 그렇게 달라진걸까? 이제는 더 나아가기가 영영 어려운걸까?
아빠가 되고 나서는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아기’라는 존재는 일정 기간동안 부모의 도움 없이는 생존 자체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들을 아이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쏟아야 했다. 특히나 여자아이의 경우, 더욱 관계 지향적이어서 엄마 뿐만 아니라 아빠와의 관계도 더 신경이 쓰였다.
자연스럽게 나와 아내의 생활은 아이를 중심으로 흘러가게 되었고, 스스로를 돌보기보다는 아이를 돌보는 데에 집중하게 되었다. 여기서 생기는 시간적 공간적 제약들은 묵묵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업무적인 부분에서의 성장은 이 대목에서 잠시 주춤하게 된다. 일과 가정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놓이는 순간이 많았고, 나의 선택은 대부분 가정이었다. 심지어 많은 엄마들은 이 무렵에 일을 포기하고 온전히 가정을 선택한 결과로 경력단절의 시기로 접어들게 된다.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
워킹맘이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워킹대디라는 단어는 조금 낯설다. 경단녀(경력이 단절된 여성)라는 단어는 익숙하지만, 경단남(경력이 단절된 남성)이라는 단어는 들어본 적도 없다.
남성의 경제활동은 당연하고 여성의 경제활동은 그에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어쩌면 육아를 온전히 여성의 몫으로 돌리는 암묵적인 사회 분위기도 일조하는 것 같다. 하지만 최근 젠더감수성이 예민한 워킹대디들이 등장하고 있고, 이에 대한 공적인 담론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아래 링크)
부모의 노력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대처해야 할 일이고, 사회 구성원들의 가치관도 조금은 이동해야 하는 일일 것이다. 그래도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해야하지 않을까?
워킹맘이 치열하게 노력하는 것처럼, 워킹대디도 일과 가정 사이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 행동해야 하는 시기가 아닐까 싶다. 일단 나부터!!
그럼 이제 아빠로 살면서 업무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혹은 살아남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답을 가족에서 찾았다. 앞만 보던 시절에 비해 자주 뒤를 돌아보게 되는 요즘, 가족으로부터 얻게 되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
아내는 종종 나의 관성적인 사고와 행동 패턴에 새로운 관점을 툭 던져놓는 경우가 있다. 그 중에 가장 큰 사건(?)은 역시 코딩 공부의 첫걸음을 뗄 수 있게 해 준 것이었다.
IT 업계에서 일하면서, 근본이 되는 코드를 몰라도 괜찮겠어요?
영어나, 일본어나, 코드나 다 언어잖아요. 외국어 하나 더 익힌다고 생각해요.
아직 완전 아가지만 딸에게 얻는 것들도 있다. 고정관념 없이 놀고 있는 아이에게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을 때도 있고, 오랫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의 실마리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의 장난감을 보면서 잊고 있던 수학공식 하나를 떠올렸던 경험은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다.
일에 대한 고민을 놓지만 않는다면, 일상의 많은 순간들이 성장의 디딤돌이 되어준다고 믿고 있고, 적어도 지금껏 나에게는 잔잔하게 적용되고 있는 일이다.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왜 일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 혼자서는 찾지 못했던 답을 아내와 아이가 매일 나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남편을 위해, 아이를 위해 아내는 늘 한 걸음 뒤에 서 있었다. 꿈을 잠시 미룬 채로 가족에 헌신하는 아내에게, 꿈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만 앞세우는 것은 부질없는 일이었다.
소중한 딸 아이의 미소를 오랫동안 보고 싶다는 생각도, 생각으로만 그친다면 언젠가 아이의 얼굴에 그늘이 지는 날이 닥쳐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생긴다.
내 옆에 있는 이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니라, 엄마가 아니라, 개인으로서의 가치를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하려면, 그리고 내 아이의 미소를 오래오래 두고 보려면, 열심히 일해서 내 가족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치지 않게, 꾸준히, 천천히, 가족과 함께 성장해야 한다는 점은 늘 명심하면서.
2018년 3월 29일에 발행한 미디엄 원문 링크를 첨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