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적 진실은 존재할까?
절대적 진실이라고 하는 것은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먼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대해서 간략히 알아보자.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상대속도의 개념을 알아야 한다.
A는 지상에 정지해있고, B는 오른쪽으로 10m/s, C는 오른쪽으로 20m/s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하자. 이때 A가 관측했을 때는 C가 20m/s로 운동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반면 B가 관측했을 때는, 항상 자신은 정지해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C는 자신에 대해 10m/s로 앞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즉, 관측하는 대상에 따라(A or B) C의 속도가 다르게 측정되는 것이다.
이것을 '상대속도'라고 하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관측자의 운동 상태에 따라 상대의 속도가 다르게 측정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내가 길거리에 가만히 서 있을 때 생각하는 쌩쌩 달리는 자동차의 속도와, 내가 자동차에 타서 달리면서 함께 달리고 있는 옆 자동차를 보았을 때 느끼는 속도는 분명 다르지 않은가.
그러나 '빛'의 경우는 다르다. 내가 가만히 서있든, 자동차에서 달리고 있든, 혹은 빛의 속도로 날아가고 있든, 빛의 속도는 항상 299792458m/s(약 30만 km/s)로 일정하다.
바로 '광속은 불변한다'는 것인데, 이는 위에서 말한 속도가 상대적이라는 것에 위배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모순을 해결할 수 있을까?
바로 우리가 '절대적'이라고 인지하는 시간과 공간을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이 동일하다고 여기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영화 '인터스텔라'에서 볼 수 있듯이, 지구에 있는 사람들의 시간과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하고 있는 사람의 시간은 분명 다르게 흐른다. 다시 말하자면, 지구에서 시간이 10초 흐르는 동안 우주선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사람의 시간은 1초가 흐르는 꼴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시간 지연 현상이라고 한다.
이러한 시간 지연의 결과로, '길이 수축' 현상이 일어나는데, '길이'또한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나는 책상의 가로길이를 1m라고 측정했지만, 다른 계에 있는 철수는 똑같은 책상의 가로길이를 50cm로 측정한다. 또 다른 예시를 들어보자. 지구에서 관측자가 측정한 목성과 토성 사이의 거리가 1km라고 가정할 때, 목성에서 우주선을 타고 빠르게 토성으로 이동하는 사람이 측정한 목성과 토성 사이의 거리는 1km보다 더 작은, 500m로 측정될 수 있다. 여기서 길이가 수축되는 현상이 나타난다.
(여기까지 특수상대성이론을 개괄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아주 얕고 간단한 설명이다.)
즉, 아인슈타인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깨고, 과거에 절대적 진리라고 생각했던 시간과 길이(공간)를 "상대적"으로 인식하면서 과학계에 혁신을 일으킨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특수상대성 이론을 제시하면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바라본다'는 아이디어로 패러다임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다시, 처음에 던진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과연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에서 '절대적 진리'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공간에 관계없이, 상황과 문맥에 영향받지 않는 절대적 진리를 찾을 수 있을까?
리처드 파인만은 자신의 에세이, 'The Value of the Science(과학의 가치)'에서 'Open Channel(열린 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금까지 과학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만큼 급격하게 발전하지 못한 이유가 사람들이 '절대적 진실'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절대적 진실'이 있다고 믿었고, 그 진실과 해답을 찾기 위해 나아갔기 때문에, 서로 다른 해답을 가진 사람들끼리 충돌이 일어나고 분열이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특정한 진실과 분명한 해답을 찾기 위해서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고 토의하며, 서로의 의견에 대해 'freedom to doubt(의심의 자유)'를 할 수 있어야 우리는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아인슈타인이 주창한 '상대성이론'만 보더라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모든 것이 상대적인 사회'이다. 절대적인 무언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시공간을 초월하여 '사실'이라고 여겨지는 명제는 없고, 상황과 문맥을 고려하지 않고 언제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앞으로 '통합'과 '포용', 그리고 '미래지향적 발전'이라는 세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진실'에 집착하는 오래된 관습을 과감히 버릴 줄 알아야 한다. 서로의 의견과 주장, 해답이 상대적임을 인지하고, 토론과 토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각각의 입장을 존중하고 포용하며 융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사회의 상대성을 인지하고, 나와는 다른 타인의 생각을 받아들일 줄 아는 것이 미래로 나아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