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어가자, 주변 지인들이 결혼정보회사에 등록했다는 말을 심심찮게 듣곤 한다. 사십대 중반이 된 형들은 꽤 진지하게 국제결혼까지 알아보고.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조급하게 만드는 걸까. 사람은 모두 자기만의 때가 있다는데, 한국 사회에서만 통용되는 나이에 맞는 그 무엇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저 세상에 내 씨를 남겨야만 하는 종족 번식의 본능 때문일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이들의 마음을, 불안을 탓할 생각은 없다. 오히려 나 역시 이유는 다르지만, 공감하는 쪽에 가까우니까. 다만, 내 성향 혹은 가치관에 맞지 않을 뿐이다. 나이, 경제력, 직업, 집안, 키와 몸무게 등등. 이러한 조건들을 나열하여 사람에게 점수를 부여하고, 가치관까지 잘 맞는 사람들끼리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여간 어색한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가 사람과 사람이 잘 어울리겠다고 소개를 해줄 때에도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부분들이고, 그렇게라도 인연을 만난다면 결과적으로는 긍정적인 쪽에 가깝겠다마는 내가 생각하는 사랑의 원형은 만드는 것이 아닌 우연에 기인하는 것.
그래서 여전히 혼자인지도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어떤 조그마한 우연을 믿는다. 거창하게 운명론을 펼칠 것까지도 없고, 그저 아주 작은 우연 말이다.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다 아주 우연히 마주칠지 모르는, 혹은 지인이 문득 나와 어울릴 사람을 소개해 줄지 모르는, 또는 오래 알고 지내는 사이에 서로 작은 마음이 싹틀지 모르는. 어떤 우연이든 분명한 건 내 성격에 혼자 늙어 죽을지언정 결혼정보회사나 국제결혼을 알아볼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편협한 시각임을 인정하고서도 나는 감히 그 행위를 사랑이라 부를 수는 없기에.
나이의 앞자리가 3으로 바뀌며 태어나 처음 한 소개팅에서 하루 중 어떤 시간이 가장 좋은지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나는 조금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계절과는 관계없이 해가 지기 전 공기가, 그래서 세상이 조금은 노랗게 물드는 늦은 오후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그게 무슨 문학적이고 철학적인 강아지 풀 뜯는 소리냐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러한 질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또 이러한 질문에 퇴근 시간이 제일 좋다고 답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고 싶다. 연애와 결혼 말고 내 삶 전체가 태동하는 듯한 진짜 사랑 말이다.
내 사랑은 따옴표나 온점이 아닌 쉼표이거나 말줄임표일지 모르고, 누군가가 말하는 감성 중독일 수도 있겠으나, 나는 사랑에, 사람에 깊은 생채기가 난 후인 지금도 여전히 너를 사랑해 한마디보다 사랑이 느껴지는 따스한 눈빛을, 손길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