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컬하고 냉소적인 나를 들뜨게 하는 사람. 이십대에도 삼십대의 진중함과 안정감을 가졌던 내가 다시 이십대 아니, 십대의 감정을 느끼게 하는 사람.
꽃을 보며 이건 뭐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하던 사람이 스스로 꽃을 사는 설렘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
별것도 아닌 것에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사람 아니, 어쩌면 사랑. 두 번째 만남에서 우연히 똑같은 파란색 컨버스를 신었다는 이유로 파란 꽃을 사고, 저장한 이름 뒤에 파란색 하트를 붙이게 되는 마음.
함께 신을 믿는 이와의 맺음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상대의 일방적 맺음을 통해 우습게도 내 믿음 역시 바닥으로 떨어졌다. 신실까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분명하게 마음 중심에 믿음이 자리 잡고 있다 믿고 살아온, 하여 함께 믿는 이들에게 사람이나 사건에서 시선을 돌려 언제나 마음 중심에 초점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떠들던 내 믿음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깨달았던 사건, 시간.
이후에 다시 하나님을 간절히 붙들어 보기도, 반대로 그 어느 때보다 방탕하게 살아보기도 했으나, 스스로 아주 선명하게 알고 있던 한 가지는 시기가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그 선하신 사랑의 품으로 돌아갈 영혼을 가진 사람이란 사실. 그저 궁금했다. 어떤 계기가 작동할지. 어느 누가 알았겠는가. 신이, 하나님이 어떠한 존재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 마음의 충돌을 통해 다시 기도를 시작하게 될지.
꽤 오랫동안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좋아하고, 반대로 그 사람 역시 이 사람을 좋아하게 되는 게 기적이라 말해왔다. 그런데 곱씹어보니, 세상 가장 큰 한 끗 차이일지 모르는 좋아함 아닌 사랑이 기적이다. 평생을 좋아함이란 감정이 발전되어 사랑을 자각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발전된다는 의미엔 분명 시간과 기간이 전제된다. 머리로 이해할 수 없지만, 무슨 자존심에서인지 인정하기도 싫었지만, 어쩌면 깨닫지 못했던, 기존의 사고와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시작부터 사랑인 사랑이 있다. 내색하지 않지만, 두려울 만큼 쏟아지는 마음이다. 입술로 뱉어내지 않았으나, 사랑이고, 곧 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