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투효과 - 01화
아이가 실종된 지 4년이나 흘렀음에도 경찰은 단서조차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수만 장의 전단이 전국에 뿌려졌고, 수백 통의 제보 전화가 접수되었다. 우리가 내건 보상금도 이미 삼천만 원을 넘어섰다.
아이를 찾기 위해 나는 남편과 함께 온 나라 구석구석을 안 가본 데 없이 뒤지고 다녔고, 그 과정에서 몸과 마음은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 살림살이도 엉망진창이었다. 남편의 퇴직금과 적금, 보험 등 가용할 수 있는 돈은 모두 바닥난 상태였다.
냉장고 문을 열면 언제 사다 놓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음식 재료들과 유통기한이 한참 지난 식품들이 썩어가는 냄새를 풍겼다. 상한 우유를 변기에 쏟아 버릴 때면 끝도 없는 슬픔이 꺽꺽 목구멍에 걸렸다.
그럴 때마다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어놓고 물소리에 묻혀 한참을 울었다.
부동산 사무실에서는 이천만 원만 깎아 주면 당장 계약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며 며칠째 전화를 해 왔다.
집을 파는 사람의 절박함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까닭 모를 설움이 목까지 차올랐다.
5년 전, 이 아파트 분양에 당첨되었다는 통보를 받았을 때 나는 설레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며칠씩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게 꿈에 부풀어 분양받았던 아파트는 주택 경기 침체로 분양 당시 가격으로 되돌아갔고, 매달 육십만 원씩 나가는 대출 이자도 더는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아이가 돌아와야 할 집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이 집을 팔고 나면 아이가 돌아올 수 있는 마지막 한 가닥 희망마저 잘라내는 것만 같았다.
부동산 사무실에서 온 전화를 끊고 나서는 거실에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엉엉 울었다.
남편은 지난달부터 지도의 남쪽 끝인 부항시를 헤매고 다녔다.
김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며 승용차에서 새우잠을 자는 생활이 일상이 되었다.
실종 당시 일곱 살이었던 막내아들 세형이는 스스로 말을 하거나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는, 세 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지적 장애아였다.
그런 아이가 혼자 집으로 연락하거나 돌아올 확률은 여전히 제로에 가까웠다.
남편을 원망하기도 했고 경찰을 탓하기도 했으며, 나 자신을 증오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부질없어져, 그저 세형이가 살아 있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4년 전, 막내 세형이가 실종되고 큰딸 세희가 납치되던 그날 이후, 납치 사건의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게 된 세희는 단지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천만다행이었다.
그래서 세형이를 찾고 난 뒤에 치료해도 늦지 않을 거라는 막연한 믿음을 품고 있었다.
초점 없는 눈으로 거실의 햇살 아래 앉아 고개 숙인 채 하루 종일 말 한마디 하지 못하는 세희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졌다. 세형이의 실종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다.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울강시 쪽에서 제보가 들어왔다며 그쪽으로 이동하겠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덥수룩한 수염과 핼쑥해진 남편의 얼굴이 떠올랐다.
모처럼 연민의 정이 바람처럼 스쳐 지나갔지만, 집안을 이렇게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은 원인이 여전히 남편이 불쑥 내밀었던 그 봉투 때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악몽과도 같았던 그 사건이 벌어진 날은, 4년 전 무더운 어느 여름날이었다.